▲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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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자서전을 써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버님 어머님의 생애를 대강 알기는 하지만 책으로 적힌 것을 가지고 있고 싶었다.

몸이 불편하셨던 아버님은 열심히 쓰셨지만, 불과 서너 페이지를 쓰시다가 돌아가셨다. 결국 아버님 어머님의 생애를 사진과 기억에만 의존하게 되었고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필자는 자서전을 꼭 써야겠다고 늘 벼르고 있다. 그런데 일생을 남기는 묘비명이라는 것도 있다. 자서전을 압축한 한마디나 문장이 묘비명이 아닐까?

3김시대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별세했다. 결국 모든 사람은 떠난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김 전 총리의 묘비명이 한참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점 허물없는 생각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 그 마음의 뿌리를 ‘무항산이면 무항심’에 박고 몸 바쳤거늘,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김 전 총리의 아내사랑은 유별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을 극진히 간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아내사랑이 절절이 배어있는 묘비명이 눈길을 끈다. 그는 국립현충원을 거부하고 아내와 함께 고향의 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늘 이야기했다고 하고 그의 소원대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주역으로 권력을 잡아 오랫동안 정권의 제2인자의 자리에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에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끌며 이 나라 정치계에 오랫동안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그가 떠나면서 보여준 아내 사랑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오랜 기간 권력과 정치의 중심에서 역사의 격변기를 지내온 그가 마지막에 스스로 남긴 자신의 묘비명이기에 더욱 화제를 일으킨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말과 함께 나를 추억하면 좋을까, 또는 어떤 문장으로 자신의 생애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모두들 묘비명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장들이 남겼던 묘비명을 한번 둘러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로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미국 출신의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고 적었다고 한다. 허무주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문체로 유명한 그이기에 그다운 묘비명인듯 하다. 그는 문체와 더불어 실제 성격까지 강인하고 거친 부분이 많았다 한다. 그의 묘비문에서 강인한 헤밍웨이의 성격이 느껴진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겸 작곡가 말러의 묘비명은 “내 무덤을 찾아오는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알 필요가 없다”는 독특한 내용이다. 말러는 활동하는 내내 지휘자로 이름을 떨치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작곡가로는 주목받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그는 늘 자신만만했다고 한다. 말러의 묘비명에서도 그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말러리안’이라는 이름의 마니아층들이 있어서 말러가 보여준 자신감을 증명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필자도 묘비명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가훈으로 늘 읖조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또는 “승리자보다는 앞장서는 사람이 되라” 이런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늘 제자들에게,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구절이다. 그러나 너무 교훈적인 그런 묘비명보다 역시 김 전총리처럼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을 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어떤 구절이 좋을까 좀더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