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피플의 어원은 베트남 난민에서 시작했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전후로 베트남에서는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누렸던 계층인 군인, 정치인, 교사 등이 공산화 이후의 불안감을 이유로 불법적 집단탈출을 시도했다. 배를 타고 해상을 통해 탈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 중반부터 1980년 중반까지 통일조국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난 베트남 난민의 숫자가 무려 1백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2015년 세 살짜리 꼬마가 해변에 머리를 묻고 숨져 있는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는 슬픔에 잠겼다. 난민을 싣고 시리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던 배가 뒤집히면서 배에 탔던 아이가 바닷가에 시신으로 발견된 사진이다. 유럽으로 살길을 찾아 떠나는 난민의 비극도 이때부터 전 세계에 알려진다. 난민의 숫자도 이때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탈출한 난민들은 대개 자국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이유로 조국을 버리고 나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유럽의 국가들로서는 매우 난감한 문제이다. 인권적 차원에서 함부로 할 수도 없지만 경제와 문화적 차이가 만들 사회적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세 살짜리 꼬마의 죽음이 공개되던 그해 독일의 메르겔 총리는 “시리아 난민을 조건없이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메르겔 총리를 세계는 ‘난민의 어머니’라 불렀다. 그해 110만 명의 난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으나 난민들의 집단 강간과 테러로 메르겔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지금 제주에는 예멘인 500여 명이 제주도의 무비자 제도를 이용, 집단으로 입국해 난민지위 인정 요청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논란도 뜨겁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으로 인정하자는 측과 무슬림과 우리의 문화 차이가 커 함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유럽의 난민 문제가 남의 나라 문제만이 아니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탓일까. 한국도 난민 문제가 현실화하는 것일까.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