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영원한 2인자’‘정치풍운아’ 등으로 불렸던 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별세했다.

그에 대해서는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끈 ‘보수의 거목’이란 평가도 있지만, 5·16 군사 쿠데타의 기획자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선거로 수립된 민주 정부를 전복한 뒤 권력을 찬탈한 ‘정치군인의 원조’라는 비판도 있다.

그의 별세 직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는 데 대해 반대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이같이 엇갈린 평가 때문이다.

김 전 총리는 1961년 5월 16일 처삼촌인 박정희 소장과 함께 5·16 쿠데타의 주역으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때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중앙정보부장, 민주공화당(공화당) 의장, 국무총리 등 박정희 정권에서 권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이후 김 전 총리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시기를 지나 신민주공화당 총재로 정치적 변신을 했다. 1990년 1월 22일 신민주공화당을 이끌던 JP는 여당인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 총재인 김영삼 총재와 3당 합당을 선언한다. 이로써 민주자유당이 탄생했고, JP는 1992년 대선에서 YS를 지원해 대선 승리를 안겼다. JP는 YS가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자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하지만 대권 도전이 여의치 않자 1997년 대선에서는 DJ와 손잡고, 그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이후 DJ정부 초대 총리를 맡았다. DJ는 IMF 극복 등을 이유로 애초 합의한 1999년까지 내각제 개헌을 끝내 하지 않았고, 2001년 JP는 DJP 공조 파기를 선언한다. 이후 JP는 2004년 자민련 독자세력으로 17대 총선에 나섰지만 당은 참패하고 10선 도전에 나선 그도 낙선, 정계를 떠났다.

JP에 대한 훈장 추서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는 “총리를 지낸 분들에게 무궁화장을 추서했던 정부의 의전 절차와 관례가 존중돼야 한다”며 훈장을 추서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이름을 남겼나.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