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다. 양국 정상의 화려한 정치적 연출은 있었으나 공동발표문은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 내용이 없는 추상적 선언에 불과하였다.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이 ‘진실’인지 아니면 하나의 ‘책략(策略)’인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또한 앞으로 논의하게 될 후속협상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이 역시 많은 장애요인들 때문에 순탄치 않은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는 한국안보에 이미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회담 직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돈이 많이 들고 도발적인 ‘전쟁게임(war game)’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동맹국의 대통령이 ‘방어적 성격의 한미연합훈련’을 ‘전쟁게임’이라고 하니 걱정이다. 북핵은 아직 달라진 것이 없는데 벌써부터 ‘한미동맹의 유명무실’과 ‘주한미군의 철수’가 우려되고 있다. 더욱이 향후 후속협상은 그 향방에 따라 한국안보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미국과 북한이 협상과정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들의 국익이지 한국의 이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안전과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하여 협상에 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김정은 역시 자신의 체제안전보장과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에 일차적 관심이 있다. 따라서 미국의 선의(善意)에 의존하는 ‘한미동맹’이나 북한의 선의에 의존하는 ‘비핵화’는 모두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배신(背信)당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常存)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한미동맹의 균열이 먼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트럼프의 ‘미국중심주의’와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정치성향’을 고려할 때 북미협상의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한국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타협안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이 제3자로서 북핵 중재외교를 추진하는데 대한 미국의 불신이 심화될 경우에는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

나아가 북미협상의 과정이 중도에서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협상의제가 매우 민감할 뿐만 아니라, 북미협상을 이용하여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지역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이 김정은에게 훈수(訓手)를 들고 있기 때문에 협상과정은 도처에 지뢰밭이다. 만약 북미협상이 실패로 끝나게 된다면 미국은 강경책으로서 ‘군사옵션’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유화책으로서 ‘평화협정체결 및 미군철수를 조건으로 대타협’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미국이 어느 것을 선택해도 한국은 엄청난 안보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북미협상의 과정 및 그 결과에서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북미협상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한국은 한미동맹과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당사국’이지 이해관계가 없는 ‘제3국’이 아니다. 우리가 당사자로서 할 수 있는 비핵화 중재외교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북미협상의 과정에서 증대될 수 있는 미국의 불신과 한미동맹의 균열을 막아야 한다.

나아가 ‘배신의 국제정치’에 대비해 반드시 ‘검증(verification)’하는 동시에 ‘자주국방’을 강화해야 한다. 국익이 최우선되는 냉혹한 국제정치에서는 ‘위계’와 ‘배신’이 난무한다. 국제관계에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이 점에 있어서는 미국이나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의 선의를 믿되 반드시 검증’해야 하며, 배신에 대비하는 자체 방위력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