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주변 4강에 둘러싸여 있다. 2차대전 후 냉전 체제 하에서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역삼각형 각축을 벌였다. 현재도 이념적으로 중국, 북한 사회주의와 한·미 자본주의 세력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주변 4강은 전통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과거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은 물론 6·25전쟁 시에도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였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문제로 주변 4강의 외교적 접촉이 활발해 지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 이은 북·중, 한·러 회담이 개최되고 미·러, 북·일 간 정상회담도 예상되고 있다. 주변 4강의 다각적인 마름모형의 외교 접촉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중국은 일찍부터 북·미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언제나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감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까지 그들의 역사에 편입시켰다. 중국은 6·25전쟁 시 의용군까지 파견하여 북한 사회주의 정권을 보호하였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전통적인 혈맹관계임을 분명히 하고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중국은 정전 협정의 당사자로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는 분명히 개입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굳건한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대중 외교를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상당한 지분을 가지려 한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이익확보를 위해 적극 노력할 전망이다. 러시아는 태평양 진출뿐 아니라 경제적 입장에서 나진 하산 프로젝트 개발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러시아와의 정상회담도 한·러 경제 협력을 통한 동북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역시 한반도 문제의 ‘저팬패싱’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수시로 제기하고 북한 핵사찰에 일본의 참여를 희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북일 관계 개선의 전제로 약 200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을 제기할 전망이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북한의 개혁·개방은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일·대러 교린 외교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 과제이다.

통일 전 서독은 1969년부터 지속적인 동방정책(Ostpolitik)뿐 아니라 주변국 외교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역사적인 통일 위업을 달성하였다. 서독은 동독에로의 접근 정책뿐 아니라 유럽 통합이라는 큰 틀의 대외 정책을 통해 독일 통일 기반을 구축하였다. 서독은 분단 상황에서도 소련과 동구 공산권을 안심시키고, 인접 프랑스와 유럽을 설득하여 유럽 통합이라는 차원에서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독일의 통일은 양독 간의 관계 개선뿐 아니라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의 누적된 결과이다. 우리도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북방 정책뿐아니라 4강에 대한 균형 외교를 정교하게 추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한반도의 현 상황은 2차대전 후 70여 년 만에 모처럼 찾아온 평화 체제 구축 기회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이제 과거와는 다른 비핵화와 개방 개혁의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주변 4강도 이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변 4강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 우리는 외교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발휘하여 주변 4강의 이익을 고려하면서도 ‘평화의 안전지대’에 도달토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먼저 남북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면서도 4강 외교의 로드맵을 보다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