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6·13지방선거를 마친 자유한국당에 ‘보수를 보수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쇄도해 있다. 유례없는 처참한 선거 성적표를 받아든 자유한국당이 혁신안을 놓고 논의가 한창이지만 보수를 보수하기엔 난관이 첩첩이다. 우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의 혁신안을 놓고 당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바른미래당도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워크숍을 열었지만 중도개혁과 개혁보수의 정체성이 충돌하면서 당의 노선 정립에 대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 단 2곳에서만 당선됐다. 동시에 치러진 12곳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는 경북 김천 지역구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바른미래당은 광역자치단체장·재보궐 선거에서 단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면서 ‘중도보수 대안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지 못했다. 선거에서 보수가 궤멸한 이유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몇 가지로 나뉜다. 무엇보다 보수의 패배는 낡은 기득권 정치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잘못했던 것들을 고쳐서 환골탈태하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다져야 하고, 책임있는 중진의원들은 김무성 의원처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반성의 의지를 행동으로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보수가 궤멸한 또 다른 이유로는 보수의 가치 내지 방향성 상실도 한몫했다. 진보를 대변하는 정부·여당이 평화 이슈를 앞세워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대안을 제시한 반면 보수를 지향하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경제 효율성만을 강조한 채 무엇을 지향하는 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평화 이슈에서도 “위장평화쇼”란 비판만 일삼았다.

보수를 재건하는 방법론으로는 사람과 제도를 동시에 완전히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 낡은 정치에 때묻지 않은 참신한 인물들을 새롭게 발굴해 키워야 한다. 인적 청산과 함께 정책 노선, 정강, 당헌, 당규의 대폭 수정도 필요하다. 리모델링이 아닌 완전한 해체를 통해 재창당 수준으로 가야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보수당의 현실을 보면서 희망없는 마을 이야기를 떠올린다. 한 청년이 세상을 둘러보고 싶어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났다. 평소 상상하던 것과 사뭇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며 기존의 잘못된 선입관을 돌아보고 갱생하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청년은 도시나 넓은 평야에서는 수확할 수 없는 특수 작물을 재배하면서 그들만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산골사람들의 모습이 좋았다. 그런 멋진 모습들을 보며 여기저기 자유롭게 여행을 하던 청년은 어떤 산골짜기에서 이전 마을들보다 제법 큰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을이 황폐하기 짝이 없었다. 고장 난 트랙터와 농기구들이 길에 버려져 있고, 떨어진 문짝이나 무너진 담벼락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활기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는 무기력한 모습들만 보였다. 청년은 마을 사람에게 이 마을 분위기가 왜 이런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저 골짜기 위쪽에 발전소하고 커다란 댐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머잖아 여기가 몽땅 수몰돼서 마을이 사라질 거야. 어차피 없어질 집하고 밭을 누가 돌보겠어? 우리 마을에는 내년이 없으니까”

이 이야기는 미래의 희망이 없으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잃게 된다는 진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정신’이란 자신의 저서에서 보수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보수주의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특정 이념이 아닌 사람들이 갖는 여러 태도 또는 성향 중의 하나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 자신이 처한 환경을 천천히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러셀 커크가 말하는 보수주의가 진짜 보수라면 선거에서 무너진 보수당은 어쩌면 ‘가짜 보수’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 보수의 희망은 “보수를 보수해야 한다”는 목소리 자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