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이 꽃피는 포항으로

▲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홍대 입구의 복합 예술공간 ‘KT&G 상상마당’.

200m의 차없는 거리, 갖가지 공연 펼쳐져
보여주기보다 스스로 즐기는 공연
나이·지위·시간·공간 초월하는 홍대거리
젊은 예술인 끼 펼칠수 있는 정책적 지원 필요

글 싣는 순서

1. 포항에선 어떤 문화예술 공연이…
2.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를 가다
3. 비엔나 공연예술가와 관객들
4. 젊음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
5.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포항으로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에 위치한 홍익대학교. 여타의 캠퍼스에 비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그 대학과 일대 상수동-합정동을 엮어 지칭하는 ‘홍대 입구’는 이제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청춘의 해방구’ 혹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의 생산기지’를 의미하는.

비단 10~20대만이 아니다. 젊음의 언어와 문화, 행동양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40~50대에게까지 ‘홍대 입구’는 낯선 명칭이 아니다. 서울 시민만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驛) 9번 출구를 나와 골목을 꺾어 돌면 어울마당로가 나와요. 거기 가면 거리 공연 하는 애들이 지천일 걸요.”

올해 홍익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 선배의 딸에게 “금요일 밤에 거리에서 노래하거나 춤추는 젊은이들을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위와 같은 답이 돌아왔다.

과연 그랬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5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홍대 입구 어울마당로는 노래하고, 춤추고, 환호하는 청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족히 200m는 넘어 보이는 차 없는 거리. 대략 10~20m 간격을 두고 통기타 공연, 힙합 공연, 보이밴드를 카피한 공연, 마임 공연까지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밤 10시가 넘었음에도 그곳은 청년들이 만들어내는 초여름 밤의 열기로 마치 대낮 같았다. 독일의 베를린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가 ‘클래식과 오페라 공연의 메카’라면, 홍대 입구는 ‘버스킹(Busking)의 성지’라 불러도 좋을 듯했다.

◆ “관객보다 내가 즐거워서 거리에 선다”는 청춘들

‘버스킹’이란 행인들에게 노래와 춤, 연주 등을 보여주고 약간의 돈을 얻어내는 공연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날 어울마당로를 채운 젊은이들에게 공연 후 관객이 자발적으로 내놓는 ‘돈’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해 보였다.

아스팔트 위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맞춰 한바탕 멋진 춤을 보여준 강한민(가명·19)씨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거죠. 세상엔 의사와 판사도 필요하지만 춤꾼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돈과 지위가 인간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라는 어른스런 말로 기자를 놀래켰다.

강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문화·예술이 함께 하지 않는 정치·경제만의 성장은 나라를 절름발이로 만들기 십상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클래식과 오페라 같은 ‘순수예술’과 더불어 ‘대중예술’이 함께 꽃을 피운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

‘문화예술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벽을 허물었다. 런던 교향악단(London Symphony Orchestra)과 록 밴드 ‘딥 퍼플’에서 기타를 연주한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의 협연은 그 생생한 사례다. 사실 21세기에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놓고 우열을 논한다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런 행위다. “앞마을 달걀과 뒷동네 계란 중 어떤 게 맛있느냐”고 논쟁하는 것처럼.

‘홍대 입구’와 인근 신촌은 1980년대부터 전위성과 실험성이 가미된 대중예술이 싹을 틔운 공간이다.

록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신촌블루스’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았던 청춘들의 우울함을 위로해줬고, 1990년대 홍대 입구 소규모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크라잉 넛(Crying Nut), 노 브레인(No Brain) 등의 펑크록 밴드는 출구 없는 세기말 젊은 영혼의 어깨를 따스하게 두드려줬다.

노래는 물론 작사와 작곡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가수 김윤아 역시 그 시절 ‘미운 오리’란 이름의 밴드로 홍대 입구 클럽에서 활동했다.

◆ 젊은 예술가들에게 ‘판’ 깔아주는 정책적 지원 있어야

2000년대에 들어서며 ‘홍대 입구’의 공연예술은 보다 다채롭게 발전한다. 어느 한 장르와 경향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

어울마당로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며 1970년대 풍의 노래를 부르던 A씨(23)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이면 홍대 입구에서 거리 공연을 한다고 했다. 그에게 물었다. “힙합과 댄스음악의 시대에 왜 하필 고풍스런(?) 통기타냐”고. 돌아온 대답이 철학자 방불이었다.

“잘난 척 하는 것 같지만….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 아닌가요. 어떤 장르가 시대에 뒤떨어졌다, 어떤 스타일이 시대를 앞서간다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그저 공연을 펼치는 사람의 영혼이 향하는 쪽으로 가는 거죠.”

밥과 빵이 사람의 육체를 키운다면, 공연예술과 문학, 미술과 영화는 인간의 정신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어울마당로에서 만난 버스커(Busker·버스킹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기주장과 논리가 정연하고 뚜렷했다.

‘공연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공연을 보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중학교 2~3학년으로 보이는 소녀 4명에게 물었다. “늦은 시간인데 왜 집에 안 가고 있어요?” 친구라는 그들의 대답은 이구동성이었다.

“어른들은 우리에겐 스트레스가 없는 줄 알아요. 그런데 안 그래요. 중학생도 짜증나는 일이 많거든요. 근데 오빠들이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그래서 가끔 친구들끼리 어울려 홍대 입구로 놀러 와요.” 말을 마친 소녀들은 다시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즐거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버스킹이 한창인 어울마당로에선 보기 드문 중년남성이 있어 다가갔다. 홍익대 지척에 자리한 서강대를 졸업하고 금융 회사에서 일한다는 정경식(49)씨.

그는 “요즘 부쩍 ‘이제 내게선 청춘이 사라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면 옛날 20대 시절도 떠오르고…. 그냥 살아가는데 위로가 돼요”라며 웃었다.

이처럼 홍대 입구 ‘거리 공연’은 연주자와 댄서, 노래하는 이들은 물론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공연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홍대 입구’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예술공간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문화상품’이자 ‘관광상품’으로 만들기까지는 분명 서울시와 마포구의 지원과 노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보고 배울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서울처럼 공연을 볼 사람이 많지 않고, 문화를 소비할 이들도 적다”는 변명만으로 일관한다면, 지자체마다 외쳐대는 “문화도시 건설”은 앞으로도 헛된 캐치프레이즈에서 멈출 게 뻔하다.
 

▲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홍대 입구의 복합 예술공간 ‘KT&G 상상마당’.
▲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홍대 입구의 복합 예술공간 ‘KT&G 상상마당’.

공연·영화·연극·강연까지…
접할수 있는 모든 예술 한 곳에
멀티플렉스 ‘KT&G 상상마당’

홍익대 아래 어울마당로를 걷다 보면 독특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7층 건물과 만나게 된다. 어둠이 거리를 장악한 밤이면 이 건물은 몽환적인 ‘마법의 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은 커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 대신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다. ‘ KT&G 상상마당(이하 상상마당)’이다.

콘서트와 연극 공연, 영화 상영과 미술 전시회까지 다양한 문화 관련 이벤트가 연중 이어지는 복합 예술공간 상상마당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7년 9월 개관했다.

청춘의 특권이자 책임이기도 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문화로의 행진’을 지원하는 이 공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지상 7층·지하 4층으로 만들어졌다. 아담한 규모의 영화관·공연장과 함께 갤러리와 문화예술 교육 강의실, 사진 암실까지 갖춘 상상마당이 20~30대에게 특별한 장소로 활용되는 건 당연한 일.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돕고, 관객과 방문자에겐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전달한다”는 상상마당의 슬로건은 기업의 바람직한 사회공헌 방식을 보여준다. 이번 6월에도 밴드 ‘잔나비’와 버스커의 합동 공연, ‘오버 더 레인보우’라 명명된 전시회, 작가 지망생을 위한 아카데미, 예술영화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다른 멀티플렉스에선 보기 힘든 영화와 만날 수 있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공연도 즐기며, 내게 필요한 강의나 강연까지 접할 수 있어 한 달에 몇 번은 찾게 된다”고 하는 대학생 김현민(25)씨의 말에는 상상마당이 수행하는 역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문화계 원로들은 “무모할지라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새로운 예술적 시도는 청춘의 특권이다. 그 문화·예술적 실험이 이뤄지는 공간이 서울만이 아닌 지방 도시에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하기 힘든 지적이다.

글/홍성식기자·사진제공/구창웅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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