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 찬

비가 와서, 기계면 구지리 여울로 와서 능금나무 푸른 능금 떨어지네 비가 오면, 늙은 도화지 속 설레던 그리움도 문지방 건너 구들목에 들어 축축하네 추억 저 안의 캐시미론 이불도 쟁여둔 능금 한 알의 그리움, 비에 젖네 퉁 퉁 불어 터지네

비 그쳐 과수밭 잎사귀 연록으로 세수하고 볕살에 맛들일 능금의 계절, 담뱃잎 귀밑머리께와 단내 나는 가지마다 찢어질 듯 사태진 능금알로 가을하는 내 사랑, 네 거기서 그렇게 바람 맞아라 바래지 않는 한 장 흑백사진으로 오롯히 살아있으라 서쪽하늘 한 줌 선홍의 노을도 적시지 말아라

푸른 여름비가 내리면 세상은 온통 푸른 물이 들고 동네 앞 여울에도 푸른 여름이 흐른다. 시인은 능금나무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붉게 익어 가지가 찢어질 듯 사태지는 능금알을 떠올리고 잇다. 푸른 여름비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결실의 시간들을 전제하고 있어서 그냥 서서 비에 젖고싶은 뜨거운 비가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