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찬·경도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필자가 중국 문화성 주최로 4월22일부터 26일까지 중국 북경 중국국제과기회전중심에서 열린 ‘중국국제화랑박람회’는 세계 각국의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부스의 반을 차지한 중국의 화랑과 21개 부스를 설치한 한국, 16개의 부스를 차지한 일본 등 동양 3국의 현대미술을 비교 해볼 수 있는 중요한 전람회였다.

우선 한국의 미술은 단순하며 생략이 많은 조형성이 주류를 이루었고 평면적이고 재질감이 돋보이며, 액자를 하지 않는 등 설치를 염두에 둔 작품과 한지를 이용하거나 젯소 등 혼합제료의 사용이 두드러지며 공정 보다는 철저한 계획성이 돋보이는 것도 눈에 띄었다.

소재 또한 심상적인 구상이나 철저한 추상성이 주류를 이루면서 장식성이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섬려하고 디자인적이며 색채 역시 깔끔하였고 여러 가지 재질감 보다는 명쾌하고 잔잔한 느낌의 표현이 눈에 띄었다. 추상보다는 다소 구상적이면서도 서정적 정서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현대적 평면회화의 실험성을 보여준 화랑도 있었다.

한편 대규모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중국의 미술은 구소련의 사실화풍이 만연한 생활 속의 인물, 누드, 풍경중심의 유화와 중국적 정서가 깔려있는 다소 정치색이 있는 작품이 많았으며, 실험성이 강한 작품들도 적색이 돋보이는 중국적 채취가 물씬하였다.

이와 함께 동양의 전통회화를 비교하여 볼 수도 있었는데 일본은 일본화라고 하는 채색화와 수묵을 다룬 작품이 다소 보였으나 실험성이나 조형성, 그리고 소재를 다루는 방법에서 전통에서 크게 변모한 작품을 찾기 어려웠고, 중국의 것은 수묵채색의 선묘위주와 복잡한 내용의 조형성을 보여주는 산수나 인물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물론 종이를 구기거나 암각느낌의 효과를 시도한 작품도 있었으나 획기적인 조형성을 볼 수 없었다. 이에 비해 한국화는 화면에 꽉 차는 조형성이 특징이었으며 군더더기가 생략된 단순성의 평필작업과 선묘로서 사의성이 강한 작품들이 많아 보였으며 한국적 채색화가 보이지 않는 점이 의외였다. 이외에 판화와 조각은 출품작이 극소수에 불과하여 큰 시선을 끌지 못한 듯 하다.

한편 경북과 대구를 중심으로 한 지역작가들은 전국적 추세와는 달리 한국화를 많이 출품하여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선 중견작가 이정은 여백성이 돋보이는 탄력 있는 선묘로 연잎을 현대적으로 표현, 옛 사대부의 문인정신을 보는 듯 하였으며, 경주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박대성은 고도 경주를 수묵실경으로 묘사하여 독창적이고 현대적 진경정신을 선보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회화수업을 한적 있는 여류 이동화는 부드러운 감수성의 공필화법으로 한국의 여인상을 아름답게 표현 채색화의 진수를, 김호득은 속도감 및 과감한 필묵과 정적인 묵점이 여백과 조화를 이룬 사의적 수묵풍경을 출품하였다. 그리고 우봉미술관 대표로 참가한 김진혁은 화선지의 번짐의 미세한 효과와 필묵의 현대성을 염두에 둔 추상적 회화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단체전으로 참가한 전병화는 전통의 채색화법을 이용한 퇴색된 이미지의 현대적 구상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박람회의 가장 관심을 끈 국가는 단연 한국이었다. 백남준의 작품이 있고 한국미술 거장전이 특별전으로 열렸다고는 하지만 그것 보다는 실험성이 강한 한국작가의 부스에는 현지인의 관심이 컸다. 작품의 다양성과 현대성, 다양한 실험재료, 설치개념, 작품의 진열까지 모든 것이 중국인들에게는 배움의 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화집과 팸플릿을 수집하고 질문은 물론 구석 구석 사진을 찍고 액자틀까지 많은 것을 알려는 눈치가 역력하였다.

다만 판매에도 염두에 둔 작가나 화랑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예술품을 인맥을 주로 동원하는 음성거래에 젖어있고 양성적으로 사고파는 풍토가 열려있지는 못한 듯 하다.

한국의 일부화랑들은 한국의 고객에게 판매하고 붉은 스티커를 붙여 자랑도 하였지만 그것은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나중에는 박람회주최 측에서 판매금액의 30%를 세금으로 공제한다고 하니 판매스티커를 제거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거대한 중국! 분명 미술시장도 기대할만 하다.

거리의 곳곳에 회화와 공예, 서예 등 전통이 살아있고 청화대학의 미술과 입학시험 240명 모집에 일만 이천 명이 넘는 응시자가 몰린다고 하니 놀랄만하다.

또한 열개정도에 불과한 북경화랑도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갈수록 숫자가 불어나고 있고 종속적인 작품판매 행태도 서서히 바꾸어 질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내년은 물론 매년 많은 한국의 작가들이 북경박람회에서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다만 올해처럼 한국의 화랑이나 작가끼리 경쟁을 하는 듯한 이미지를 탈피하여 현지에서 국제성을 염두에 둔 활발한 진전과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 일본, 프랑스 등 외국인에 작품을 팔고 그곳의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그곳에서 화제가 되어야지, 국내시장의 홍보용이나 화랑끼리 경쟁용에 더 신경을 써 참가한다면 순수예술의 가치를 저버리는 것은 물론 한국미술의 국제화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다 다양한 한국미술을 보여주어 어느 한부분이 한국의 현대미술의 전부처럼 보이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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