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오릉 동쪽 담을 끼고 가노라면 고대광실 같은 기와집이 있다. 요즘에는 보기 드물게 큰 집이라 다소 위압감이 들긴 하지만 대문이 따로 없어 기웃거려 봐도 될 만하다.

돌로 조각된 십이지신상이 동물 조각상을 따라 안뜰로 들어가보면 한약재가 채반에 담겨 마당 가득 널려 말리고 있다. 한약재의 향기가 아무라도 반긴다. 경주 꽃마을한방병원이다. 서울에 소재하는 꽃마을한방병원의 경주분원인 셈이다.

오늘의 책, ‘딸에게 들려준 엄마의 성공이야기’는 꽃마을한방병원장인 강명자씨가 여성영화인인 딸 황보임이 쓴 어머니의 자서전이다.

자서전의 주인공은 우리나라의 여성한의학박사 1호로 지난 10여 년 간 1만 2천여 명 이상의 불임 여성들에게 임신의 기쁨을 선사한 덕분으로 자연스레 ‘서초동 삼신할미’로 불리며 그 명성을 높이고 있는 꽃마을한방병원 강명자 병원장이다.

몇 년전 모 공중파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성공시대’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소개되었던 적이 있다.

작가인 딸 황보임씨는 미국 뉴욕대학에서 극작과 연출을 전공한 여성으로, 현재 영화모임 라보엠 필름에서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하면서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있는 촉망받는 여성영화인이다.

책 속에는 평범한 초·중등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재학시절 난치병을 앓는 주인공의 모친을 한의학 처방으로 기적같이 쾌차시킨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한의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 60명의 학생 중 홍일점으로 입학하여 6년 내내 수석자리를 지켰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동물실험을 통해 불임에 대한 전통한의학 처방의 탁월한 효능을 입증하며 우리나라 여성 제1호 한의학 박사에 오르는 과정, 지천명의 나이에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공익법인을 통해 꽃마을한방병원을 개원하고 한의학의 현대적 발전과 더불어 의료를 통한 사회봉사 및 정기 건강강좌로 한의학을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는 모습들을 읽어가다 보면 한 우물만을 고집스레 파내려 간 강명자 병원장의 아름다운 삶에 감동받는다.

‘음양의 파도’란 용어가 눈길을 끈다. 이 말은 동양 철학자이자 한의학자였던 부친이 자주 쓰던 용어에서 따온 것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크고 작은 인생의 파도에 부단히 맞서 정직과 성실로 음양의 파도타기에 성공한, 그래서 여한의학 박사 1호로서 선도적 한방병원 병원장이 된 강명자 병원장의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여느 자서전들과 달리 어머니와 딸의 공동작품 형식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딸인 작가는 어머니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여러 달 동안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공유한다. 그러면서 자연인 어머니가 아닌,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강명자 병원장의 삶 속에 묻어있는 고뇌와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려는 자세를 깨닫게 된다. 그 사랑과 감동을 잔잔한 필체로 글 속에 녹여내고 있다.

옛날 옛적에, 홍일점의 비애, 음양의 파도, 모녀같은 고부, 반지의 여왕, 삼신할미의 성공시대 등 총 6단락으로 구성되어있다. 책 갈피갈피에 강명자 병원장의 이력을 증명하는 사진을 삽입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에필로그 부분에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강명자 병원장의 애정 가득한 글이 실려 있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국문과 교수>

    윤희정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