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 교수
‘세대갈등’, 요즘 한창 열기 오른 정쟁의 장에서 뜨거운 감자 같이 새롭게 등장한 용어다.

모 당의 책임있는 인사가 잠시잠깐 한 책임없는 식언은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는 파도에 휩쓸려 헤어날 길을 못 찾고 있다.

그러기에 말은 하고 나서 곱씹지 말고, 하기 전에 입 속에서 혀를 둘려 침 한 번 더 삼키고 내뱉어야 할 일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차라리 “말로서 말 많으니 말말을까 하노라”, 선인의 경지에 오르시던가….

그런데 ‘세대갈등’은 최근의 화두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유독 우리나라만 경로효친하는 오랜 유교적 덕목으로 그 용어를 회피하였을 따름이다.

이 책, '플로이드의 오래된 집'은 현재, 미국의 아버지와 아들이 겪은 세대 갈등과 그 극복과정을 잔잔한 어투로 말해주는 책이다.

원제는 리노베이션즈(renovations). 이 말은 ‘다시(re)새롭게(nova)하기’라는 뜻이다. 집을 새롭게 고친다는 의미이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즉 이 책은 낡은 집을 사들여 수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살아가면서 조금씩 헐고 물 새고 삐걱거리게 된 관계를 함께 땀 흘리며 ‘개수(改修)’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은이 존 마르께제는 미국의 잡지나 신문 등 수 십 개의 인쇄매체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이다.

이 글 속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저자가 시골의 집을 하나 사서 그것을 아버지와 함께 고쳐가는 과정의 이야기인 셈이다.

목차를 훑어보면 알 수 있듯이 벽 허물기에서부터 시작된 낡은 집을 고쳐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옛날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아버지와의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해가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아들은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고집불통으로 기억하고 또한 아버지가 아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관심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또한 아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으며, 키운 보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부자간의 벽이었는데 그 벽을 허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들은 ‘대학 들어가는 아이들이 손으로 꼽을 정도’인 소읍에서 대도시의 지식사회로 진출한 뒤 전원의 한적한 삶이라는 꿈을 실현하려 한다. 30대 지식인의 전형적인 인물, 그러나 전직 건설노동자인 아버지는 무식하지만 집 짓는 데는 전문가.

지식의 무게는 아들이 더 무겁지만 집 고치는 데는 아버지가 프로이고 아들은 아마추어이다. 집을 직접 고치는 과정에서 둘은 부단히 부딪힌다. 아버지의 타박에 아들은 모욕감과 격심한 고통까지도 참아낸다.

그렇지만 프로페셔널인 아버지도 실수를 한다. 임시 문턱을 설치한 뒤 실수로 그걸 밟아 부순 아버지의 얼굴에 참담함이 묻어난다. 슈퍼마켓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아버지는 며칠 동안 일을 쉬는 일이 생기고 그러면서 저자는 “하루 종일 내가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지 얘기하고, 내 손에서 연장을 뺏어 쥐고 직접 일을 해버리는 노인이 없었다. 나는 그 분이 그리웠다”고 아버지를 인정하게 된다.

어린시절부터 지겹도록 들은 아버지의 자랑들이 감탄스러울 리 없었던 것들이 온갖 어려운 일을 체험한 지금에는 생각이 다르다. “정말로 대단한 일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폭 2피트의 발판을 타고 12층으로 올라가다니… 아버지는 스파이더맨!” 본문 끝을 인용한다.

”아버지와 나는 어두운 날들을 헤쳐왔고, 그 어두웠던 시기에 나는 단지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란 이유로 아버지를 싫어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 또한 나에 대해 똑같이 느꼈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우린 그 감정에 대해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의 이해에 도달했다. 우리는 없는 데서도 서로에 대해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위덕대 국문과 이정옥 교수>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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