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지가 꽃과 나무들의 세상이다. 세상에 살아있는 것은 저희들밖에 없는 듯 색깔 바꿔 꽃 피우고, 꽃 진 자리엔 대번 잎이 돋으니, 인간세상 살 맛 없을지라도 저들의 꽃다움에 겸허해진다.

지난 식목일을 전후하여 나무와 관련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박상진 지음, 김영사),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박상진, 랜덤하우스 중앙), ‘산과 숲 나무에 얽힌 고향이야기’(경상북도), ‘광릉숲에서 보내는 편지’(이유미, 지오북), ‘나무 쉽게 찾기’(윤주복, 진선출판사), ‘지율, 숲에서 나오다’(지율, 도서출판 숲) 등 한 번 사두면 두고두고 읽을거리들이다. 특히 모든 책들이 좋은 사진을 곁들이고 있어 눈요기에도 좋다. 그 때문에 책값이 만만찮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의 책,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박상진 지음, 김영사)는 나무박사가 쓴 인문교양서다.

역사에서 찾아낸 나무와 사람들의 이야기와 나무문화재에 담겨진 우리의 삶과 문화에 대해 쓴 보기 드문 좋은 책이다.

저자 경북대학교 임산공학과의 박상진 교수는 스스로 나무문화재학자라고 말한다. 원래 전공은 나무의 세포 형태를 공부하는 목재조직학으로 일본 유학시절부터 나무문화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에 매진해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관재, 고선박재, 주요 사찰 건축재, 주요 출토목질유물 등의 재질분석에 관여하였다.

그가 나무문화재에 관련하게 된 연유를 일본 유학 시절 만난 강우방(전 경주박물관장, 현 이화여대 교수)씨와의 인연이라며 책의 1편 ‘나무학자와 문화재의 인연’에서 상세히 적고 있다.

흥미로운 몇 가지만 소개해보면, 신라 고분에서 나온 ‘천마도’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재료인 백화수피에 방부제 역할을 하는 큐틴이 많이 함유돼 있었기 때문. 하지만 저자는 이 백화수피가 자작나무 껍질이 아니라 신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제수나무나 사스레나무일 것이라고 말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경판은 재질 분석 결과 대부분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였고 강화도가 아니라 해인사 근처에서 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인들이 가장 우아한 예술품이라고 아끼는 ‘목조반가사유상’은 일본 유일의 소나무 불상이기 때문에 한반도 제작설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나무문화재 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무 분석 이야기들과 함께 나무에 얽힌 다양한 상식들을 구수한 옛이야기 들려주듯 설명한다. 나이테란 나무가 자랄 당시의 환경을 켜켜이 기록한 ‘자연의 하드디스크’이며, 거북선이 박치기 명수로 일본 함선들을 박살낼 수 있었던 것은 단단한 참나무로 만드는 조선 군선의 특징 덕분이었다는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귀하디귀한 침향을 구할 길 없어 향을 심어 침향으로 변하길 바라는 매향 풍속이 생겼다는 설명이나, 최근 부활한 전통공예인 황칠 이야기, 숯을 얻기 위해 숲을 망가뜨리는 바람에 결국 나라마저 망한 신라의 이야기 등도 흥미롭다. 그 외에 나무들의 영원한 사랑, 연리지 얘기나 버들가지의 애달픈 사연 등은 제목만 보고도 단박 구미를 당긴다.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책은 평소 많은 사람들이 그저 무심히 지나쳤을 오래된 나무조각 하나에 얼마나 유장한 역사의 흐름과 문화의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담담한 어조로 깨우쳐 준다.

<이정옥 위덕대 국문과 교수>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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