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역사를 말한다면 흔히들 왕조사, 궁중사, 또는 지배계층의 정치, 문화와 사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몇 년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TV드라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주변부의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도 바로 그런 관점에서 쓴 책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왕과 양반처럼 고귀한 사람들 아니면, 홍경래나 임꺽정처럼 무언가 큰 사고를 낸 사람들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다.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까? 불과 몇 십 년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인물이 될 것이다. 이들을 누가 기억할 것인가. 장구한 시간 우리 역사를 만들어간 대다수의 평민을 누가 기억할 것이며, 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준단 말인가. 역사라는 거대하고 엄숙한 담론에 가려진 잊혀진 사람들의 삶, 그들 삶의 리얼리티는 이런 작고 시시한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 강명관 교수(부산대학교 한문학과)는 존재했으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 너무 일상적이고 사소해서 묻혀버린 역사, 지배 중심의 역사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한 서민들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다. 이 책은 2001년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통해 ‘참신한 시각, 시원스러운 글솜씨, 꼼꼼한 고증을 바탕으로 풍속사의 새로운 전형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강명관 교수의 ‘조선풍속기행’ 두 번째 이야기다.

민중의 조광일, 백광현, 피재길. 백범의 탈옥공작 벌인 불한당의 괴수 김 진사, 최고의 대리시험 전문가 류광억, 반촌 사람 교화에 나선 안광수, 최고의 판소리꾼 모흥갑, 유흥계 누빈 거문고의 명인 이원영, 조직폭력배 검계를 일망타진한 포도대장 장붕익, 검계의 일원이었던 집주름(부동산 중개업자) 표철주…. 이 책을 통해 이름 석자와 함께 자신들의 삶을 세상에 알린 이들이다.

이 만큼의 많은 역사적 인물을 찾으려면 적잖은 사료를 찾아야 할 것 인데, 저자는 조선시대 개인 문집을 비롯하여 ‘백범일지’ ‘황성신문’ ‘조선왕조실록’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이 자료들을 읽고 해석하는 저자의 자세는 마치 탐정이나 추리소설가의 그것과 흡사하다. 하나의 주제를 꼬투리 삼아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광범하게 섭렵하며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옛날의 기록들은 생생한 현장보고서로 다시 태어난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는 마치 신문의 사회면을 보듯 당시의 사건 사고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왕실과 집권세력의 역사와 이전투구를 설명하는 근거자료로만 인용되었던 ‘실록’의 새로운 면모이다. 역사서나 국문학 관계 서적 속에서 두꺼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법한 자료들과 기록들도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로 거듭난다. 스스로의 궁금증 때문에 이 ‘한심한(?)’ 주제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갈무리해둔 저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는 비주류 인생들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다. 탕자, 왈자, 도박꾼, 술집 등 ‘시시한 주제들’에 관심을 쏟은 것 또한 그러한 애정에 기반한 것이리라. 반면 ‘근엄’ ‘엄숙’으로 치장된 양반과 주류사회에 대한 시선은 냉철하기 그지없다. 그 이면에 가려진 허상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길게는 500년 전 짧게는 100년 전 삶의 모습이 지금과 별 다르지 않음을, 당시의 문제의식과 부조리, 민중들의 삶의 애환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민중의들의 활약상을 통해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군도의 출현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뿌리깊은 부조리를, 도박의 성행에서 우연과 불확실성이 똬리를 틀고 있는 세상사를, 타락한 과거장의 모습에서 고시열풍에 휩싸인 일그러진 우리의 모습을, 반촌 사람들을 통해서는 돈과 권력의 보유 정도에 따라 거주지가 나눠지는 세태를 짚어내고 있다. 역사란 단지 역사 책 속에만 존재하지는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정옥 위덕대 국문과 교수>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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