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파나마운하 이야기다. 자유한국당의 대참패로 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여서 온통 선거 이야기인데, 왠 파나마운하 이야기냐고 의아해할 지 모르지만 잘 들어보시라. 민심의 물결이 바뀌고, 미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안보지도가 바뀌는 데도 보수층 지지만을 겨냥해 안주해온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홍해와 지중해를 관통하는 수에즈 운하는 세계의 항로를 바꾼 대역사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것은 나폴레옹이었고, 총감독을 맡아 완공한 것은 토목기사이자 외교관이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였다. 그는 첫 삽을 뜬 후 불굴의 의지로 흙을 파내며 10년간 공사에 매달렸고, 마침내 운하가 개통되는 날 수에즈운하에 오페라 ‘아이다’를 올렸다. 그로부터 12년후 레셉스는 파나마에 입성했다. 수에즈 운하 공사에 자금을 대주고 이용료를 받는 것으로 대박을 터트린 금융업자들이 파나마에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기로 했고, 그 책임자로 ‘운하계의 대스타’ 레셉스를 지목했다. 레셉스는 또 한 번 자신의 명성을 높일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1881년에 착수한 공사는 8년동안 고전한 끝에 중단됐고, 레셉스의 회사는 파산했다. 수에즈 운하가 세워진 곳은 사막의 평원(해발 15m)이었던 것에 비해 파나마운하 공사현장은 열대의 밀림(해발 150m)이었기 때문이다. 사막과 열대의 차이, 해발고도 15m와 150m의 차이를 무시했기에 레셉스의 실패는 당연했다. 그는 왜 그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했을까. 바로 ‘휴브리스(Hubris)’때문이었다.

‘극단적 오만, 자기 과신’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인 ‘휴브리스’는 역사학자 토인비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의 연구’에서 ‘성공에 도취되어 자신의 방법과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사람들을 경고하며 사용한 단어다.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는데 성공했던 레셉스는 ‘휴브리스’에 빠져 있었다. 한 번 크게 성공한 이들은 종종 자신들이 성공한 방법이 모든 곳에 다 통하는 절대적 진리라고 착각하는 ‘휴브리스’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레셉스의 ‘휴브리스’가 가져온 결과는 참혹했다. 8년 동안 무려 2만 2천명의 인부가 희생됐고, 3억 5천200만 달러의 건설 경비가 사라졌다. 레셉스가 포기한 수에즈운하 공사는 25년이 지난, 1914년 미국에 의해 거대한 갑문을 이용한 저수식 운하로 공법을 변경해 완공됐다. 사실 갑문식 공법은 레셉스가 파나마 공사를 시작할 당시에도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공법이었다. 레셉스 한 사람의 ‘휴브리스’로 몇 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천문학적인 돈을 허무하게 날려 버렸으며,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헛되이 보내게 했던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6·13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검사출신 정치인으로서 1993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등 권력 실세들을 구속 기소하면서 이름을 날렸고, 이 사건이 드라마 모래시계 등의 작품의 소재가 돼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15·16·17·18대 국회의원을 잇따라 지내며 당 대표까지 올랐고, 이후 경남도지사로 변신했다가 지난 해 자유한국당 19대 대선후보로 나섰으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다. 고집스런 검사를 거쳐 4선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을 지낸 그의 남다른 경력은 그에게 강한 휴브리스를 부여했고, 여기서 증폭된 거침없는 입담이 그의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하지만 툭 하면 터져나오는 막말논란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방선거에 앞서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으로 인한 북풍이 휘몰아치자 전쟁위협이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로 부푼 국민들에게 ‘위장평화쇼’라고 일축하는 모습을 보여 민심을 잃은 것도 그의 업보일지 모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홍준표의 휴브리스는 얼마나 많은 보수지지층의 마음을 압살하는 참사를 빚었을까 짐작키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