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경북대 교수·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부

지난 12일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기막힌 장면을 보여준 덕분이다. 북한은 유일하게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나라다. 중국은 1979년 미국과 수교했으니, 내년이면 중미수교 40주년이다. 20세기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 불린 베트남 전쟁 당사국인 베트남도 1995년 미국과 수교했다. 베트남 전쟁 종결 20년 후의 일이다. 쿠바 역시 지난 2014년, 단교 53년 만에 미국과 수교했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 올해까지 68년 동안 북한과 미국은 적대적인 관계였다. 특히 작년에는 전쟁까지 가나 싶을 정도로 양국관계가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걸었다. 북한이 자위(自衛) 목적으로 핵을 개발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반감이 원인이었다.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자국의 동맹이나 우방들의 핵무기 개발은 용인하고, 적대적인 북한의 핵은 용인하려 하지 않았던 터다.

더욱이 수감 중인 전직 수구 대통령들의 어리석고 무모한 대북 적대 정책으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는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2016∼2017년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함으로써 평화의 서광이 깃들기 시작한다. 불과 몇 달 전의 풍전등화같던 상황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게 된다.

서울에서 개성까지 버스로 50분 거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영화 ‘강철비’에 등장하는 파주의 산부인과 의사는 북한 최고 지도자 이름을 모른다. 남한 최고학부를 다닌 의사가, 그것도 접경지역 파주에서 밥 벌어먹고 살아가는 지식인이 북한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도 파주가 나온다. 대낮에도 대남방송이 온종일 들려오는 파주.

북한에도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는 2천500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산다. 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백두산 천지를 가본 사람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와 같은 식생과 기후, 언어와 음식이 마음을 따사롭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어떤 동질감과 친밀감이 느껴진다는 얘기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철책이 철거되어 통일이라도 될 것 같은 들뜬 마음을 지울 길 없었다. 그날 이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21세기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 구도를 깨뜨리는 일대 사변이다. 북한과 미국이 회담에 임하는 동안 한반도 남단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의 선언은 단비처럼 다가온다.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입으로는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모순의 극치다. 우리에게 장사치로만 소개된 트럼프의 왜곡된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로잡히는 기현상(奇現象)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웃음이 아니 나올 수 있는가?! 일찍이 한반도가 좋은 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두 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세력의 반북-친일-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 아니던가?! 미국 외교가에서 나왔다는 ‘존경할 만한 적, 경멸할 만한 우방’은 얼마나 우울하고 불쾌한가?! 역사적인 사건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현대사의 중차대한 일획(一劃)이 그어지는 시점에 살고 있다. 천운이다. 정말로 기분 좋은 날들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