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성삼재에서 대원사까지

▲ 구름들 사이로 천왕봉(왼쪽 편 저 멀리)이 간신히 몸을 드러내고 있다. 밤엔 감기로 끙끙 앓았다. 산은 산을 타고 질리도록 이어졌다. 저 많은 산줄기의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서서 모든 곳이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한 곳이었음에도,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저 산이 야속하기도 했고 노엽기도 했다. ‘한낱 몸’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몸이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마음을 이미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잠깐 동안 나아지는 틈을 타 도둑고양이처럼 산을 넘었다.
▲ 구름들 사이로 천왕봉(왼쪽 편 저 멀리)이 간신히 몸을 드러내고 있다. 밤엔 감기로 끙끙 앓았다. 산은 산을 타고 질리도록 이어졌다. 저 많은 산줄기의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서서 모든 곳이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한 곳이었음에도,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저 산이 야속하기도 했고 노엽기도 했다. ‘한낱 몸’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몸이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마음을 이미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잠깐 동안 나아지는 틈을 타 도둑고양이처럼 산을 넘었다.

△성삼재에서 화개재까지 : 마음으로 몸을 세울 수는 없다

새벽 4시,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른다. 며칠 전부터 떠돌던 감기 기운을 약으로 눌렀지만 그 기운은 눌리지 않았다. 기침은 나지 않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땀이 흐른다. 이틀치 음식과 옷과 자질구레한 것들로 배낭은 무거웠다. 다행히 길은 어두워 일행은 내 상태를 알지 못했다. 아픈 중에도 처음 해보는 야간 산행에 들뜨고 열에 달떴다.

노고단까지 올라 이제 능선만 따라가면 그만이라는 대장님의 말에 안심했으나 산에 대한 산꾼들의 모든 말은 거짓말임에 분명했다. 길은 꼬리를 물고 산을 넘나들며 나를 혹사했다. 평소 같으면 뛰듯이 달렸을 산길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산에서 달린 적이 있던가,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했나?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들 하지만, 몸에 마음이 깃든 것이므로 마음으로 몸을 세울 수는 없었다.

거의 500~700m 마다 표기된 이정표를 지나칠 때마다 부아가 치솟았다. 1km를 가는 데 거의 30분이 걸렸다. 간신이 임걸령에 도착해서 일행을 기다렸다. 동창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사진을 부탁했다. 채 20m도 되지 않는 샘으로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곧 뒤따라온 대장님이 젊어지는 샘이라며 먹고 오란다. 대장님 죽을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물로 눅여내고 다시 걷는다. 이제 날이 밝아 내 상태를 알게 된 대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애써 웃어 보인다.

△지리산 역종주의 추억 : 두려울 것 없는 푸른 깊은 밤

지리산 종주는 이번이 두 번째라고는 하지만 벌써 15년 전이니 아무것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때는 같이 갔던 사람이 아홉이었나, 열이었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등산학교를 따로 다닐 만큼 산을 좋아하던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선배가 대장을, 내가 후미를 맡았다. 나보다 세 살, 많게는 여섯 살 아래의 후배들이 가운데를 채웠다.

온전한 여름이었고 천지도 모르고 산엘 갔었다. 우리는 역종주를, 그러니까 치밭목으로 치고 올라 뱀사골로 내릴 것이었다. 치밭목에서 잠을 자고 써레처럼 생겼다는 써리봉에서 운해를 보고 천왕봉을 넘었다. 그때는 예약을 하지 않아도 여자들은 무조건 대피소 안에 재워 줬다. 남자라고 해봐야 달랑 넷인 우리는 소주를 마시고 벽소령에서 비박을 했다. 고요한 산 가득히 어둠과 별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밤, 잠은 이제 겨우 천왕봉을 넘어 느리게 느리게 다가왔다. 아침 이슬에 깨어 밥을 지었다.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한답시고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중략…고향에도 지금쯤 뻐~욱꾹새 울겠네” 같은 노래를 째지는 목소리로 불렀다. 맞은편에 우리와 비슷한 조합의 일행을 만났는데, 거기에도 꼭 나같이 실없는 사람이 있어서 서로들 데리고 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산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처럼 반가웠다.

화개재에서 뱀사골로 내리며, 이제 다왔다는 말로 후배들을 위로했다. 허나 끝은 보이지 않았고 기어이 한 후배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기운이 남아도는 되바라진 후배는 “야, 공강일 나랑 달리기 할래”라고 했다. 끝없이 내려뻗은 계단을 구르듯 달렸지만, 앞서가는 그 한발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하산해서는 민박을 잡고 고기를 구워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해져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나와 달리기를 했다. 아까는 졌지만, 이번에는 꼭 이길 생각이었는데, 가볍고 날렵한 이 후배는, 운동화를 손바닥에 신고, 아스팔트를 칼 루이스처럼 아니 약물 복용한 벤 존슨처럼 달렸다. 하늘이 뱅글뱅글 돌아 별은 자꾸만 늘어났다. 나는 내친 김에 계곡에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는 푸른 깊은 밤이었다.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 어둠을 캐는 어린 광부들

그때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는데, 스틱도, 배낭도, 등산화도 없이, 그래도 힘든 줄도 몰랐는데, 이번 산행은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연하천 대피소에서 다시 잠들었다, 깨어나면 이젠 정말 감기가 떨어졌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달렸다. 형제봉에서 1.5km 남았다는 벽소령 대피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6.3km 남은 세석 대피소를 향해 출발.

얼마 안 가서 선비샘. 천대와 멸시를 받던 노인이 죽어서라도 존중을 받고 싶어 이 샘에다가 묻어달라고 했더란다. 이곳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은 물을 마실 때마다 허리를 굽혀 절 아닌 절을 하게 되었다고, 유래가 적혀 있다. 참 유난스런 노인네라고 생각하면서, 인사만 잘하면 선빈가, 괜히 툴툴거리며 덕평봉엘 올랐다. 여기서부터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오른편으로 새롭게 생겨나는 능선을 보며 송수권의 시를 떠올렸다.

여러 산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몸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 下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

을 알았다.

…하략… (송수권, ‘지리산 뻐꾹새’)

여러 마리의 뻐꾹새가 우는 줄 알았지만, 실상 알고 보니 한 마리 새였다고,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들이 받아 넘겨 커지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세석평전을 가득 메운 철쭉꽃밭을 붉게 물들인다고 시인은 울음을 삼키듯 노래했다.

오후 네 시께 세석대피소에 도착해 이른 저녁을 먹었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다시 3.4km. 촛대봉을 지나며 발을 삔 중학생을 만났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대장님의 말만 믿고, 학생에게 스틱을 빌려주었다. 대장님은 백두대간만 열여섯 번이나 오간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다. 발에 채는 돌도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장터목은 한 없이 멀었다.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능선들, 저 아름다운 능선들 앞에서 수없이 혼절했다.

기듯이 장터목에 도착해 오후 일곱 시부터 누웠다. 몸이 불덩이처럼 끓었다. 감기약이 없어 두통약을 먹고 앓았다. 내일 아침, 눈앞에 보이는 천왕봉은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지긋지긋한 지리산을 내려갈 참이었다. 매 시간마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그럴 때마다 열이 내려 새벽 1시엔 입고 있던 웃옷이며 바지를 벗고 거의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다. 새벽에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거뜬해졌다, 아쉽게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나아 일행들 역시 아쉬웠다고들 한다.

▲ 공강일<BR>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나는 아무런 의지도 없었는데, 내 몸이 자기 마음대로 나를 천왕봉으로 밀어 올렸다. 해돋이를 보러온 중학생들이 헤드랜턴을 끄는 것도 잊은 채 양 옆으로 기진해 길을 밝혀 주었다. 그들은 어둠을 캐는 어린 광부들 같았다. 천왕봉에서 우리는 정상주를 마시며 구름에 가린 해돋이를 심안으로만 바라보았다. 천왕봉에서 다시 중봉으로 중봉에서 써리봉으로 정신없이 내달았다. 치밭목에서 남은 쌀을 긁어모아 밥을 짓고, 남은 음식들을 모두 넣어 ‘라면국’을 끓였다.

치밭목에서 유평마을까지 한달음에 내달았다. 하산하자마자, 한질도 넘는 계곡에서 멱을 감았다. 괴로웠던 산행의 흔적은 씻기지 않은 채 몸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소설 한 대목이 떠올랐다.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김연수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거짓말처럼 굵은 빗방울이 물위로 떨어져 파문을 지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웃음이 파문을 따라 번져나가고 있었다. 이 산을 그리워하게 되리란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