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주사위는 던져졌다. 한반도는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남북이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을 서막이 열린 것이다. 미국도 여지껏 가보지 않았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낯선 역사를 시작한 장소가 되었다. 대한민국 언론에 북한의 인공기가 펄럭이게 되었으며, 북한의 언론에 미국 대통령의 동정이 우호적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역사는 매우 더디게 흘러가지만, 어느 순간 바람이 불고 물결이 거세지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겨우 한 계절만에 해치우기도 한다. 한국전쟁을 휴전으로 찜찜하게 멈춘 것이 벌써 65년. 긴 세월동안 가보지 못한 그 땅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찾아보지 못한 그 골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헤아려보지 못한 세월은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을까.

세월의 무게를 돌아보자면, 어제 목격한 역사의 진전은 오히려 너무 가볍다. 이마저도 사람들의 복잡한 생각을 버무린 끝에 만들어진 결과이지만, 단 하루의 만남으로 정리되고 보니 그 모든 고난, 그 많은 갈등 그리고 그 많은 이야기들이 바람 결에 흩어지는 낙엽인 듯 하여 차라리 아깝다는 생각이다. 아직도 오가지 못했던 쓰라린 가슴들이 저렇게 멍든 채 남아있는데, 아직도 다툼 가운데 스러져 간 젊은 영혼들의 기억이 이렇듯 생생한데 우리는 이제야 새로운 시작을 이토록 싱겁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새로운 문 앞에 선 겨레는 이 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그만큼 ‘소원’이라 불렀던 지향점을 새롭게 다짐하여야 하며, 인류에게 소망으로 다가온 ‘평화’를 이제는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어느 몇 사람 지도자가 이루었다고 하는 것도 대단한 착오인 것이다. 반세기를 견디며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 드디어 작은 결실을 본 것이며 앞에 선 몇 사람은 그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여 심부름을 했을 따름이다. 그 모든 눈물과 한숨을 기억하여야 하며, 그 귀한 희생과 목숨들과 바꾼 결과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한 일이라 내세우지 말 일이며 모두가 모두에게 감사하며 다짐을 새롭게 할 일인 것이다. 길고 긴 기다림이 이제야 손님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며 아프고 쓰라린 다툼이 이제야 끝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수고는 인정하지만 한반도와 세상이 요청하는 부름 앞에 오히려 더욱 진중하고 겸손해 질 일이다.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놓은 것이며 갈 길이 아직도 멀다. 겨레의 기대와 소망 가운데 걸어 온 길이라면, 우리의 관심과 지켜보는 마음을 이제야말로 더욱 바로 세울 때가 아닐까. 주변의 열강들이 깊은 호기심도 가질 것이며 속으로는 탐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야 하며 더욱 밀도있는 집단지성도 발휘하여야 한다. 이제는 큰 대륙 끄트머리에 붙은 초라한 한반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대륙과 바다를 잇는 교통과 교역의 중심점, 한반도의 자리를 분명히 세워가야 한다. 그간 쌓아온 겨레의 역량과 상상력을 이제야말로 아낌없이 사용하여야 한다.

이제 새 길이 열려오는가 보다. 수많은 고난과 골 깊은 어려움의 골짜기를 지나 이제는 한반도에 새벽 동이 터오는가 싶다. 오늘 발견한 작은 씨앗을 소중하게 키워내어 내일의 거목으로 자라게 할 사람도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어쩌면 가장 중요할 한반도의 역사를 함께 열어가는 다짐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노라는 각오도 분명히 하여야 한다. 오늘같은 날이 마침내 있기 위하여 어제는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겨레의 앞길은 우리가 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