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계단에서 즐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즐거운 소리를 마중하러 교무실을 나왔는데, 메아리만 있고 아이들은 어느덧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걸음들이 어찌나 빠른지 6월 햇살이 아이들 등 뒤에서 헉헉거리며 쫓아가고 있었다. 모습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아이들인데 찬란한 6월 햇살을 받은 모습은 그대로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불볕더위도 아이들의 아름다운 발걸음만은 어쩌지 못했다.

필자는 아이들이 향하는 곳이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이 아이들을 저토록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 대상이 너무도 부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으로 빠르게 아이들을 따라가 보았다. 아이들이 멈춘 곳은 식당 창문 앞 화단이었다. 점심은 아직 멀었고, 그렇다고 필자가 모를 간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필자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교무실 전화기가 계속 울렸지만, 너무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필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필자의 시선은 마치 학생들의 움직임에 꿰어진 것처럼 학생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학생들은 식당 창문 앞 화단을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 나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나무를 포위하듯 에둘렀다. 동작들이 어찌나 능숙한지 처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 자리를 잡은 학생들은 나무와 거래를 하듯 양손을 일제히 나무쪽으로 뻗었다. 나무는 학생들의 손이 부끄럽지 않게 뭔가를 가득 내어주었다. 학생들은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6월의 따가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은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나무와의 거래를 멈추지 않았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아니었다면, 학생들은 나무와 한 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학생들이 둘러싸고 있는 나무가 무엇인지 빠르게 생각해보았다. 일본 향나무, 공조팝, 작약, 두릅나무, 모과나무, 감나무 등 여러 나무 이름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나무들은 학생들과 거래를 할 뭔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교감 선생님, 어디 편찮으세요?” 몇몇 학생이 현관에서 고뇌하며 서 있는 필자를 위로하며 교실로 갔다. 생각이 날려고 할 때 나무와 거래한 학생들이 땀을 흘리며 뛰어왔다. 현관에 서 있는 필자를 보고 학생들은 수업에 늦은 것에 대해 혼이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멈칫멈칫 하고 있었다. 필자는 제일 먼저 달려온 학생에게 물었다. “너희, 방금 거기서 뭐 했니?” 학생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필자를 보았다. 다음으로 온 아이가 “교감 선생님, 앵두가 정말 맛있어요. 한 번 드셔 보실래요?” 하며 빨간 앵두가 가득한 손을 내밀었다.

“앵두?” “네, 앵두가 너무 예쁘게 잘 익었어요. 정말 맛있어요” 답을 한 아이는 부산에서 온 학생이었다. “그래 어떤 맛이니?” “신 것같으면서도 달콤하고, 그리고 끝 맛은 시고 단 맛이 동시에 나고 아무튼 처음 맛보는 맛인데 정말 맛있어요” 아이가 내민 손에 담긴 앵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학생들은 수업에 늦었다며 빠르게 필자를 지나 교실로 갔다.

학생의 온기가 남아 있는 앵두를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 주전부리가 넉넉하지 않을 때 동네 어귀에 있던 앵두를 경쟁적으로 따먹던 시절을 생각했다. 그 때는 정말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정(情)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정으로 필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지금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라졌다고만 생각했던 정을 필자는 앵두를 건네는 학생들에게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나라 교육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했다.

앵두를 따던 아이들은 현충일 아침 전몰장병, 특히 학도의용군의 넋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학생이 건넨 붉은 앵두를 오로지 북쪽에만 정성을 쏟는 대통령과 교육감을 하겠다면서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교육감 후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