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등 현장 “시행 앞두고 부실한 기준”
저소득층 임금 하락 등 부작용 우려 높아
청와대 ‘국민청원’엔 근로자들 푸념 가득

주 52시간 근로시간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지난 11일 주요 쟁점을 정리한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다음 달 1일부터 300인 이상 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되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혼란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행을 코앞에 두고 내놓은 기준치고는 너무나 부실해 혼란만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발표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직장 내 회식은 원칙적으로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거래처 회식은 상사가 지시해 법인카드로 결제했다면 근로시간으로 본다. 업무상 지인과의 식사, 주말 골프 등 거래처 접대도 사용자 지시나 승인이 없으면 근로시간이 아니다. 사내교육은 성희롱예방 교육과 산업안전교육 등 법정교육과 사용자 지시에 따른 직무교육 등은 근로시간에 포함되나, 권고 차원이나 근로자가 원해서 신청한 교육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출장은 하루 8시간 등 소정 근로시간으로 간주하거나 노사 합의로 시간을 정할 수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부 간부와 산하기관장 등이 참석한 ‘긴급 주요 기관장 회의’를 열어 “노동시간 판단 기준 등 매뉴얼을 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과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편으로 임금이 감소된다는 등 현장의 우려가 많다”면서 “근로시간 단축 안착 등에 대한 준비와 대응이 미흡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300인 이상 기업(3천700여 곳) 중 74%인 2천730곳에 대한 실태 조사가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594(22%)곳에서 인력 충원을 준비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상승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장관의 말대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단기적인 고용상승 효과는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부분 기존 근로자들은 임금이 줄어들어 노사갈등까지 번질 우려가 크다. 벌써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인터넷 사이트는 주 52시간 시행과 관련해 하소연으로 가득하다. 노동시간 단축의 궁극적인 목표인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일 가정양립)이 성립하려면 근로시간도 중요하지만 임금이 보장돼야 한다는 푸념이 대부분이다.

포항철강공단의 한 근로자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해도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면서 “주 52시간만 일하면 최저임금으로 200만원도 못 받는다. 몸이 편한 것보다 가정을 먹여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원사이트에는 “여가생활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부족해지는 월급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고 한숨만 짓게 됩니다. 저에게 근로시간 한 시간 한 시간은 생명 같은 시간입니다”라고 적은 근로자도 있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월급이 줄어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할 지경이라는 주장도 많다. 세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한 가장은 “남는 시간에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기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판”이라며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이 오히려 저소득층의 가정을 옥죄고 있다”고 힐난했다.

/안찬규기자 ac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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