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 시인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와 드디어, 시 암송을 시작했다. 받아쓰기와 책 읽기 등에서 칭찬쿠폰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한 딸아이에게 시 암송을 한 편씩 할 때마다 칭찬쿠폰을 세 장씩 주겠다고 하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덤볐다.

지난 휴일 아침에 김철순 시인의 동시집 ‘사과의 길’(문학동네어린이)을 딸아이에게 건넸다. 암송할 시는 ‘나비’라는 동시다. 봄날에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을 아주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묘사해놓은 좋은 동시다. 미술의 입문은 드로잉부터고 문학의 입문은 묘사부터 시작이다. 글로 어떤 상황이나 장면, 사물을 묘사하는 법은 시인이나 작가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본기다. 묘사가 잘 된 시나 글을 통해 묘사의 특성을 체득해야 한다.

딸아이가 암송하기에는 ‘나비’라는 시가 비교적 길고 내용도 어려워서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아빠가 세 네 번 정도 낭송해주며, 어려운 낱말이나 정황, 시의 맥락을 쉬운 말로 짚어주니 딸아이는 스펀지처럼 쭉 받아들였다.

오늘 아침에는 딸아이가 동시집을 따로 챙겨 가방에 넣는 것을 보았다. 학교 가서 쉬는 시간에 보고 외우겠다는 것이다. 어찌나 기특하고 예쁘던지! 물론, 칭찬쿠폰 세 장이라는 커다란 당근 덕분이겠지만, 시 암송을 꾸준히 하려면 당근 뿐만 아니라, 부모나 교사의 동참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딸아이에게 시 암송을 시킨 아빠도 시 암송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과 자율자동차, 빅 데이터, 코딩, 드론이 미래 산업의 먹거리로 부상한 4차 산업시대에 세상에, 시 암송이라니! 작금의 정보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교육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작,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하는 명문 학교에서는 ‘암송’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교육과정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시나 문장을 ‘검색’하는 것과 ‘암송’하는 것은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특히, 사상과 문장의 에센스만 모아놓은 시를 암송하는 것은 사고력과 창의력의 토대를 질적으로 향상시킨다.

오늘날의 시 교육은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해석적이다. 특히 중·고등학생에게 시는 단지 풀어야 하는 암호거나 기호일 뿐이다. 이는 시를 학생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음미하고 낭송할 수 있다면 입시에 고통받는 학생들의 정신 건강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시 암송의 방법으로는 짧은 시, 재미있는 시, 서정시, 명시부터 외우는 것이 좋다. 검증받은 좋은 시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에는 시를 몇 번이고 읽으며 그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시상이 떠오르고 공감이 되면 시를 서너번 베껴 써 본다. 반드시 베껴 써 봐야 한다. 읽어보는 것과 베껴 써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베껴 쓰고 나서 더듬더듬 외워 본다. 완전히 외웠을 때는 시의 분위기와 느낌을 잘 살려 낭송을 해본다. 그런 다음, 생활하다가 그 시가 떠오르면 기억을 되살려 외워 보는 것이 좋다. 한 번 외웠다가 넘어가버리면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생활 속에서 가끔 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좀 더 많은 학교와 학급, 가정에서 시 암송을 시켰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의 학생들은 수학경시니 독서논술이니 영어경시니 할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학창시절에 암송한 수백편의 시가 마음의 재산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학급에서 집에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자녀와 함께 매 주 한 편씩 시 암송을 해보기를 권한다.

그건 그렇고, 우리 딸아이가 첫 번째 시 암송을 통과해서 칭찬 쿠폰 세 장을 받을까 못 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