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구축여부의 분수령이 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핵심 의제인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둘러싸고 막판 줄다리기를 벌여온 양측이 도달한 합의점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대원칙으로 삼고 이를 지지하고 기대해온 우리에게 마지막에 들려온, ‘개괄적 합의 후 후속회담’ 전망은 우려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 도착해 회담준비에 들어갔다. 들려오는 소식만으로는 미국과 북한이 사전 실무회담에서 한국의 입장에서 안심할 만한 ‘한반도 평화 구축방안’에 합의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김정은이 CVID를 위해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여전히 CVID에 대해서는 진전이 없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행 전인 9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포기에 진지한지 아닌지는 1분 이내에 알 수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진지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 대화를 계속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정적인 체제보장과 북-미 수교, 백악관 방문, 경제 지원 같은 장밋빛 미래를 김정은 위원장 앞에 거듭 예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한반도 비핵화’만 운운할 뿐 CVID에 대한 확언을 거부한 채 구태의연한 ‘단계적 비핵화론’에 기대고 있는 낌새다.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벤트성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신중을 기하는 것이 옳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대를 철거했다는 소식으로 미루어 회담국면에서 미국의 위험을 제거해주는 데는 적극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냉정하게 따져볼 때 ICBM같은, 미국 국민들이 신경 쓰는 직접적인 위협수단을 제거해주는 조건으로 북미정상회담이 머무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고, 우리는 한미동맹에만 목을 매야 하는 한심한 경우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는 순간 어쩌면 대한민국의 핵무장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지구상에서 국가와 국민들이 스스로 안전하게 생존할 길을 모색하는 일보다 더 귀한 가치는 없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결과가 미국에게 아무리 의미있는 것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사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냉철한 이성으로 지켜보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판단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