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지음·문학과지성사펴냄
시집·8천800원

“나는 가끔 후회한다/그때 그 일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그때 그 사람이/그때 그 물건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걸….//반벙어리처럼/귀머거리처럼/보내지는 않았는가/우두커니처럼…./더 열심히 그 순간을/사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시인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전문)

한국 현대 시단의 ‘거목’정현종(79) 시인이 1989년년 펴낸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가 복간됐다.

이 시집은 출판사 세계사에서 초판이 발행된 이후 2005년 2판이 나오기도 했으나, 이후 절판돼 서점에서 구해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판권을 가져와 ‘문학과지성 시인선 R시리즈’로 이번에 새롭게 펴냈다.

이 시집은 정현종 시인의 네 번째 시집으로, 대표작 중 하나인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을 비롯해 시 64편이 담겼다. 1980년대 폭력과 저항, 공포와 죽음이 압도하는 가운데 생명의 가치와 인간의 사랑을 강조한 시들로 높이 평가받는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에서 생명에 대한 애착은 그 기저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기에 한층 각별하다. 이 시집의 시들은 시대의 공포와 죽음을 목도한 시인이 1980년대를 휩쓴 폭력과 거친 세상을 비판하는 한편, 나아가 고통을 회피하기보다 감싸 안으려 한 흔적이기도 하다.

▲ 정현종 시인
▲ 정현종 시인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첫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은 얼마전 방영된 tvN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다뤄져 더욱 널리 알려졌다.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숨쉬는 정현종의 시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는 1970년대의 ‘섬’(‘나는 별아저씨’)에서부터 지난해 연말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방중 때 낭송됐던 ‘방문객’에 이어, 등단 50주년인 2015년 발표한 ‘그림자에 불타다’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53년 시 인생. 그 허리께쯤 위치하는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정현종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제격인 시집일 것이다.

1965년‘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정현종 시인은 지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의 묵직한 주제를 무겁지 않은 시어로 풀어내 한국 주지주의 시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세대 국문과 교수 등을 역임했고, 201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으며, 201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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