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생각하며 (16)

어떻게 하다 보니 요즘에는 옛날 노래를 잔뜩 듣게 된다. 처음 발단은 110볼트나 듣는 컬럼비아 포터블 LP 플레이어를 오랜만에 꺼내 본 것. 그러자 옛날 음반을 다시 들어보고 싶어졌다. 헌책방에 가서 보니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반이 나와 있고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도 봤다. 유튜브 접속률이 네이버 접속률을 훌쩍 뛰어넘었다던데,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 정부 때는 ‘팟빵’이나 잔뜩 듣던 것이 최근에는 뭐든지 유튜브다. 최근에 두 달 무료 시험이라는 말에 ‘넘어가’ 화면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김민기 노래를 새로 듣는 기쁨이 예사롭지 않아 ‘꽃 피우는 아이’도 듣고, ‘금관의 예수’도 듣고, ‘공장의 불빛’도 들었더니 사람이 새 사람이 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다. 옛날로 돌아가면 새사람이 되는 건가? 조용필이 김민기 세대 가까울 텐데 두 사람 음악이 그렇게 다른데, 얼마 전까지 조용필이 좋다고 하던 게 무색, 이번에는 역시 김민기가 귀하다고 고개를 여러번 끄덕인다.

그러다 갑자기 이번에는 외국으로 튀었다. 존 바에즈라는 옛날 포크송 가수, 누구나 사랑할 만한 음색을 가진 여성 가수다. ‘파이브 헌드레드 마일즈’, ‘솔밭 사이로 강은 흐르고’, ‘고향의 푸른 잔디’ 같은 노래가 그녀의 것인데, 일종의 미국 민요 같은 것이고, 민중들, 흑인들의 애환을 노래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중 유별난 곡 하나, ‘Diamonds and Rust’(다이아몬드와 녹)라는 것이 있는데 옆에 옮겨 놓기는 했지만 참 묘한 제목이다. ‘녹슨 다이아몬드’라고 해야 차라리 맞을 것 같은데, 어떤 가사 번역은 ‘행복과 불행’인가 하는 식으로 완전히 의역을 해버렸다. 보통 노래가 아니다. 옛날 남자에게서 장거리 전화가 와서 통화하는 이야기지만 사랑을 읊은 노래 중에도 이만한 노래는 있기 힘들지 않나 한다. 이 장거리 통화의 주인공이 밥 딜런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누가 주인공이냐가 문제 아니라 이 가수의 음색과 ‘어조’, 가사의 아름다움이 보통 아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나? 옛날 노래에 감읍하는 나이병? 당연히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 생각해 보니 이게 다 비주얼 만능시대인 때문인 것도 같다. 옛날 같으면 외국 노래는 듣기는 들어도 리듬과 음색만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보니엠이 부르는 ‘바빌론 강가에서’라든가 그 유명한 ‘원웨이 티켓’을 가사 음미하면서 좋다고 부르고 듣는 사람이 한국 청년 가운데 몇이나 되었을까? 요즘에 유튜브 같은 곳에서 보면 판이 달라졌다. 옛날에 라디오나 테이프로만 듣던 것을 동영상으로 듣게 된다. 김민기는 그런 게 별로 없지만 존 바에즈가 그렇고 모리타 도지도 그렇다. 보니엠은 ‘써니’나 ‘대디 쿨’, ‘라스푸틴’ 같은 노래를 가사에 그들의 공연까지 함께 듣다 보면 그들 그룹의 존재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옛날에는 그런 노래를 옮겨 번안해 부르던 가수나 몇몇 전문적인 귀를 가진 사람들만이 알던 노래를 가사까지, 공연 실황까지 시청각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되는 기쁨. 간단치 않다. 세상의 이기가 발달한다는 것, 역시 나쁜 일만 있는 것 같지 않다. 명암, 음양을 함께 보는 눈이 필요한 시대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