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호 승

어느날

썩은 내 가슴을

조금 파보았다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흙에

꽃씨를 심었다

어느날

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

너무 궁금해서

조금 파보려고 하다가

봄비가 와서

그만두었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비는 자연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인은 답답하고 막막한 인생의 한 노정 가운데서 맞는 봄비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본다. 어떤 예감과 기다림, 기대감으로 가만히 봄비를 맞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