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핵폭탄’이 등장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세 기둥 중의 하나인 사법부의 중추 대법원이 무참히 흔들리고 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나서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강제 수사하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법치’의 기본은 사법부에 대한 ‘무한 신뢰’다. 법원의 중립성과 판사의 양심이 의심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란 한낱 허울에 불과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조사결과 보고서에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 사찰과 재판 개입 등을 시도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 2014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상고법원 설치 안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감시하고, 특정 재판에 대해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억장이 막힌다. 나라가 제아무리 허술하여 행정부가 정치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거나 입법부가 밤낮 멱살잡이만 한다 하라도 법원은 절대중립을 지키고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최후의 보루 아닌가. 이 기막힌 소동을 놓고 여지없이 세상은 또 두 갈래로 갈렸다. 한 쪽은 사법개혁의 당위성을 말하고, 다른 한 쪽은 사법부 장악음모라고 외친다.

작금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는 현상처럼, 이 사건의 모양새 역시 ‘항명’의 이미지를 감수하는 내부고발자의 모습으로 ‘투사’적 행태를 보이는 판사가 있다. 얼마 전 일선검사가 검찰총장을 향해 반기를 드는 일로 세상이 어지럽더니, 이번에는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의 차성안 판사가 나서서 불법사찰을 당했다며 끝장을 보겠다는 식으로 할 말 못할 말 다 내뱉는 결기를 보이고 있다.

차 판사는 특조단의 조사보고서 발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특조단이 형사고발 의견을 못 내겠고, 대법원장도 그리하신다면 내가 국민과 함께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다른 판사들도 차 판사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뒤따른다. 이쯤 되면 법원을 중심으로, 이 나라의 사법기관에 ‘혁명’정국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위계질서 따위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난센스다.

법관의 판결을 놓고 가타부타 떠들어대고, 그 이면에 무슨 거래가 있다고 악악대면서 전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외쳐대는 나라가 온전한 나라일 수는 없다. 이 사태의 핵심은 두 갈래다. 그 하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사법부가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냐 아니냐다. 두 번째는 결과적으로 그 거래가 재판관들의 판결에 영향이 미쳤는지의 여부다.

우리가 이 혼돈의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대법원 판사들이 재판거래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이 입증되는 것뿐이다. 만약에 박근혜 정권 때 대법원이 통진당, 전교조, KTX 해고 재판 등 논란이 있는 판결을 놓고 거래를 했다는 의혹에 티끌만큼이라도 진실이 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법치국가가 아니다. 그 어떤 재판도, 그 어떤 판결도 정당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일부의 반발처럼 이 소동에 사법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의 음모와 작전이 추호라도 개입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행태야말로 나라를 말아먹을 농단이요 중대범죄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의 궁금증은 대법관들의 입장에 쏠려 있다. 사법부 핵심 속살의 실체적 진실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 그들인 까닭이다.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한 대법관 7명이 먼저 입을 열어 양심을 밝혀야 한다. 전임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줄줄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날에는 나라꼴이 절단나고 말 것이다. 충역(忠逆)을 가르는 시퍼런 칼날 위에 이 나라 사법부가 위태로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