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서예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고봉 기대승 선생이 집안 일이 겹쳐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여러 말들이 확대 생산되자 해명하기 위해 쓴 글이 있다.

이 글은 세 가지 해명으로 행적에 대해 해명한 적해(跡解), 생각에 대해 해명한 의해(意解), 사리에 비추어 해명한 이해(理解)로 구성하여 논리적으로 풀어 놓았다. 요지는 대개 선과 악행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나 비방과 칭찬은 타인에 의한 것이라 어찌할 수 없으니 스스로 떳떳할 수 있도록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수신으로 비방에 대한 옛사람들의 전형적인 대처법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방법 말고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소된다는 식으로 느긋한 대처법도 있다. 중국 한나라 때의 문신인 직불의와 제오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불의는 조정의 동료들로부터 형수와 간통을 했다는 모함을 받았고, 제오륜은 장인을 상습적으로 구타한다는 모함을 받았다. 그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탓에 소문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중에 ‘내게는 형수가 없다.’ ‘내가 결혼했을 때는 장인이 돌아가신 뒤였다.’고 하자 비로소 오해가 해소되었다 한다. 야박하게 따지지 않는 도량에 대한 미담으로 자주 인용하는 고사이지만, 주자나 고려말기 학자인 이곡(李穀)은 이들이 초기에 해명하지 않고 비난을 묵묵히 감수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들 스스로는 해명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는 몰라도 요즘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식의 대처는 자칫하면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남을 모함하지 않도록 고민하는 것이 정상인데 문제는 우리가 늘 모함을 당하는 사람의 대처 방식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모함이 일어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그 첫째는 시기심이나 사욕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의심 때문이다. 시기심이나 사욕의 경우는 스스로가 소인배의 도량에서 일어난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의심으로 인한 경우는 조금 더 객관적인 노력만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이 이웃집 아이를 의심해 살펴보았을 때는 모든 동작이나 태도가 영락없이 도끼를 훔친 자의 행색이었는데, 나중에 도끼를 다른 곳에서 찾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더라는 열자(列子)의 교훈이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의심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기에 사람이 한 번 품은 의심을 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억울한 비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보다 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꼭 남을 해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그 경우라면 어떻겠는가라는 생각을 수시로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바로 대학에서 말한 혈구지도(<FFFC>矩之道)인 것이다.

피감기관의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와 청탁금지법 위배의 의심을 받는 60여 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과 드루킹 댓글사건의 또 다른 축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의 연루 여부는 아직 의혹만 무성한 상태다. 또한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역시 지난 대선 전까지 드루킹을 몇 차례 만나 이 중 간담회 참석 사례비로 두 번에 걸쳐 수 백 만원을 받았으며, 김 후보와 드루킹을 연결시켜 준 인물로 의심을 받아 경찰에서 소환 조사를 검토 중이다.

이렇듯 고위 공직자나 위정자들은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을 행위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사실 여부가 의심 속에서 전개되는 상황과 어긋난다면 적극적으로 해명하여 국민들 앞에 그 의심을 풀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면 응당 법의 처벌을 받는 사회가 바로 민주사회인 것이다. 대통령의 인기나 정당의 지지율 뒤에 숨어서 세상을 농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부류들을 축출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은 국민에게 정신적 폭력을 무차별 행사하면서도 당연시하고, 잘못을 합리화하며 권력의 그늘에 기생하는 권력 기생충으로 변해 사회를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