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길수수필가
▲ 강길수 수필가

첫 손자 태극이가 큰 메시지를 선물했다. 우리 가족의 품으로 온지 아홉 달을 막 지날 때였다. 돌아보면 두 달이 되기 전에도 주었는데, 내 미련이 늦게 알아챈 것이다. 메시지선물이 바로 태극이인 듯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녀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을 즐겁게도 하고, 놀라게도 하며, 애간장을 태우게도 하였다. 난지 두 달을 며칠 앞둔 날. 할머니가 “맘마 먹었어?”하고 어르는 말에, “응!”하며 대답하기에, “맘마 먹었어요?”라고 또 물으니, “응!” 하고 다시 대답하였다. 세 번째도 같은 대답을 해 식구들을 감탄케 했었다.

석 달이 될 무렵 녀석 엄마가 찍어 보낸 동영상. 엄마는 어르고, 녀석은 힘찬 고성반응으로 서로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여러 번 소리 질렀다. 끝부분에는 성질부리는 얼굴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을 보는 동안, ‘요놈이 천의 얼굴을 가졌구나!’하고 드는 생각에 놀라면서도 기뻤다.

다섯 달을 넘길 때. 예방접종과 감기가 겹친 후유증으로 경기(驚氣)를 일으켰는지 몸에 열은 높은데, 피부가 파래지며 녀석이 까무러졌단다. 처음 혼자 당한 아이의 위급사태에, 엄마는 아빠에게 급히 알린 뒤 아이를 꼭 감싸 안고 울 수 있을 뿐이었다. 급보에 황급히 달려간 할머니가 손가락을 따고 주무르는 등, 민간응급처치요법을 하며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 작은 발에 주사바늘 호스를 달고도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는 마음을 더 아프게 했었다.

아홉 달이 막 지나는 한 날. 녀석의 삼촌과 숙모가 오랜만에 조카 집에 가 형제, 동서지간의 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단다. 녀석 삼촌이 짧은 동영상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이 동영상이 커다란 메시지선물로 다가올 줄을 처음엔 몰랐다.

동영상은 비록 반분정도로 짧았지만, 작품급이었다. 동영상을 보는 어른, 아이들도 다 보고 웃게 했으니까. 동영상은 태극이가,

“아빠, 아빠, 아빠아아!”

라고 삼세번 부르며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장면이었다. 할머니도, 나도 하도 신기하고 기특하여 보고, 또 보곤 했다. 며칠 지나면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영아가 왜 아빠를 삼세번 불렀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고, 물음은 메시지로, 선물로 변신하여 찾아왔다.

‘태극이’는 제 부모가 지은 태명이다. 그래서 일까. 돌아보면, 생후 두 달이 채 안되었을 때, 할머니와 옹알이를 나누며 ‘응!’하고 삼세번 대답했다. 또, 아홉 달 무렵에도 누가 묻거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빠!’를 삼세번 불렀다. 영아인 태극이가 ‘삼세번’이란 메시지를 선물한 이유는 무엇인가. 삼세번은 우리겨레는 물론, 하늘이 사람에게 내리는 소명이 아닐까.

삼세번과 연관된 겨레의 풍습이나 사상, 표상은 많다. 삼세번은 겨레의 삶에 스민 천부적인 문화란 마음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태어 난지 두 달 및 아홉 달 밖에 안 된 태극이가 삼세번을 대답하고, 삼세번 아빠를 불렀을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겨레의 삶에는 ‘삼세번문화’가 서려있다. 국회를 비롯한 지자체, 단체 등의 회의 때엔 의사봉을 삼세번 친다. 만세삼창, 운동시합의 삼세판, 잘못도 삼세번은 용서해주는 풍습이 있다. 이렇듯, 삼세번은 바로 우리겨레가 사는 양식(樣式)이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그리스도교의 신앙대상인 하느님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신이다. 또 힌두교에도 창조신 브라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의 삼신일체설이 있다. 이런 종교들의 신조도 삼세번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진다.

흑백논리로 치닫기 쉬운 이원론문화보다, 천지인삼태극사상이 뿌리내린 우리겨레의 삼세번문화가 사람의 소통과 화합에 더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꼬여가는 지구촌에 삼세번 문화가 퍼져나가, 꼬인 매듭을 푸는 지구공동체가 되면 참 좋겠다.

맏손자 태극이의 삼세번 메시지선물이, 그 따사한 아가 손으로 가슴에 스며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