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아시아 펴냄
산문집, 1만5천원
“사랑하지 않아야 사랑이 온다. 사랑하면 그 사랑은 달아나기 십상이다.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첫사랑은 실패로 남는다. 사랑을 이론서 안에서만 이해한 치들은 ‘사랑은 주는 것’이라며 순정한 사람들을 기만해왔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충만해진다는 것은 거짓이다. 사랑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다만 혼란이다.” - 김살로메 ‘사랑하지 않아야 사랑이’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소설가 김살로메씨가 산문집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아시아)을 펴냈다.
작가는 작정하고 일천 글자로만 된 미니 에세이를 썼다. 작가가 찍은 10여 편의 사진과 함께 80편의 짧은 산문을 엮었다. 일상에서 느낀 가족, 이웃, 문학에 대한 순간의 심상을 캐리커처처럼 그려냄으로써 글 쓸 당시의 작가의 내면 풍경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 단상 속에서 그는 이웃과 사람을 불러내고 책과 문학을 품는다. 그러다가 깨치거나 반성할 것이 있으면 메모를 한다. 대개 소설이 되는 그 기록에서 씨앗 같은
아침놀이나 비에 젖은 꽃잎처럼 떨어져 나온 말들이 미니 에세이가 됐다. 소설로 묶기에는 따뜻한 말들, 이를테면 아무리 싸우려고 해도 미소부터 나오는 하루, 뺨을 때리는데도 안아주고 싶은 상대, 떠벌이지 않아야 할 때를 놓쳐버린 찰나의 비애, 무심결에 맞서는 매서운 바람의 기척 등, 때론 스미거나 번지는 말들이 한 편의 산문집이 됐다.
그의 글은 투명하다. 투명한 사람이 쓴 투명한 미니 에세이. 막 소리 내어 욕망하지는 못하지만 그는 분명히 남다른 감각과 체험을 지닌 작가다. 세계와의 충돌을 인정하지만 조화로운 공존 또한 모색하려는 성찰적 자기 고백. 더하고 보탤 것 없이 작가는 이 짧은 산문을 통해 쨍한 유리창처럼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 이 미니 에세이는 한마디로 사람과 문학을 바탕으로 한 김살로메 작가의 일상 고백록이라고 할 수 있다.
/윤희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