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증명한다면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를 실행했다.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면 비핵화 의지를 밝힌 하나의 쇼(show)로는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만 밝혀져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께름칙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과대평가해야 할 이유라곤 전혀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기에 대해서 애초부터 이미 6차례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더는 쓸 수 없는 시설 아니냐는 시각이 있었다. 북한은 이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3번, 4번 갱도는 언제든 실험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폭파가 복구가 불가능한 완벽한 파괴인지 여부조차도 당장 알 수는 없다. 갱도 내부의 붕괴 정도는 취재진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지 않았다.

북한 취재를 마치고 중국 서우두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난 미국 CNN 방송의 월 리플리 기자는 “우리가 본 것은 거대한 폭발”이라며 “갱도의 깊은 안쪽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북측은 영구히 못 쓴다고 말했지만, 우린 그걸 검증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미국 CBS 방송의 벤 트레이시 기자는 “우리가 본 것은 입구”라면서 “그 장소를 다시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언론인”이라고 설명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가 비핵화 과정에서 핵사찰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증거인멸 쇼’라는 주장은 더욱 진지하다. 핵실험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상하게 알 수 있는 증거물의 보고(寶庫)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겉으로는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핵개발 증거들을 한꺼번에 묻어버리는 일석이조의 사기극을 벌였다는 의혹인 것이다.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에 끝까지 핵 전문가들을 배제한 것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은 4·27 남북 정상회담 때 직접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핵실험장을 5월 중 폐쇄하고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우리 기자들을 빼놓았다가 느닷없이 한미정상회담이 끝나자 선심쓰듯 방북을 허용하는 갈지자 행보까지 보여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남북한 화해무드 속에 평화협정이니, 북미정상회담이니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주제들이 나돌지만 정작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달라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끝날 때까지 절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겨야 한다. ‘시작의 시작’일 뿐인 하찮은 현상 앞에서 우리는 더욱 차분해져야 한다. 단 한번 오판으로도 모든 것을 망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