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나의 희망은 항상 실현되지는 않지만 나는 희망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오비디우스의 말이다. 온 겨레가 바란다. 핵 전쟁 위협 없는 한반도, 이산가족 자유왕래, 남북 경제통합, 그리고 평화통일로 이어지는 통일 구상이 실현되는 그날을. “이루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어렵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나서며 한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23일)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다고 한다. 그의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 기자로서 함께 했던 필자로서도 그의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모습, 그리고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고뇌하던 그의 이마주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가 바라던 평화통일에 대한 열망이나 각오를 되새기는 추도식에 많은 사람들이 찾은 것은 갑작스런 남북화해무드가 그가 뿌린 씨앗에서 비롯된 것이란 때늦은 깨달음도 한 몫 했을 법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 봉하마을을 찾아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서 다시 찾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은 추도식 당일 태평양을 건너 미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있었다.

미북정상회담을 앞둔 미국과 북한의 힘겨루기는 전문가들의 엇갈린 전망을 불러오고 있다. 필자는 낙관론에 한 표다. 최근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체제보장과 평화협정 체결, 미국의 경제 지원을 원했다고 밝힌 점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미북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아도 좋다”거나 “다음 주 알게 될 것”이라고 연막을 치는 것을 보면 미국은 현재 ‘헐리우드 액션’을 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미 북미수교를 확신한다는 발언까지 쏟아내고 있는 데, 바로 옆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연기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북한이 바라는 것을 쉽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기싸움의 일환이요, 협상전략의 하나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내 정치적 입지도 녹록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간 평가격인 11월 선거를 겨냥해 뭔가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만한 업적을 이뤄야 할 처지다. ‘미국 국익우선주의’를 모토로 정권을 잡은 강경보수파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느닷없는 강짜외교에 상을 뒤엎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그러지 않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어떡하든 미북정상회담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거두고 싶은 공명심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이를 간파했기에 미북정상회담의 성공을 확신하며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그리 말한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의 철학자인 G. 무어는 ‘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에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양식을 정하는 길목이 된다. 좋은 선택인 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의 삶에서 자신만이 매길 수 있는 독단적 권한일 수 있다. 다만 정치적 판단에 관한 한 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사실상 선택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그대로 머무르기로 한 것도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한반도 해빙무드로 들뜬 가운데 자유한국당 분위기는 싸늘하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오늘도 줄기차게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쇼에 불과하고, 미북정상회담도 제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도 폭파쇼에 불과하고, 머지않아 북한의 마각이 드러날 것이란 악담에 열을 올린다. 온 국민이 바라는 해빙무드가 한국당에는 불편하기만 해보인다. 정략도 좋고 전술도 좋지만 국민의 여망에 고춧가루 뿌리는 행태는 이제 그만두면 좋으련만. 선택은 자유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하루속히 이뤄지기를 응원하는 데 한 표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