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생각하며 (14)

서울에 광장시장이라고 있다. 종로 4가 및 5가와 청계천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오래된 곳이다. 유래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지금의 남대문 시장보다도 훨씬 큰 곳이었다고 한다.

이 시장에 대해서 그럼에도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백화점 체질도 아니라서 거기서 물건 사본지가 까마득하지만 시장 체질도 아닌 까닭이다. 광장시장 입구에 약국들이 늘어서 있어 제법 싸다는 것, 꽃가게와 종묘 가게가 볼 게 좀 있다 할 정도다.

이곳에 며칠 전에도 약을 사야 할 일이 있어 갔다. 고혈압 약 먹기 7년차, 이제는 허리 디스크, 목디스크, 당뇨 경계 지수에 통풍, 백내장까지 왔다. 이대로 가면 오래 못 가지 하면서도 산에는 제대로 못 가고 약으로 근근히 버티는 중이다. 인생은 성장해서 무성해졌다가는 쇠하고 병들어 삶을 다하게 마련이다.

사야 할 것을 샀다 하고 모처럼 ‘시내’에 나온 김에 잠깐 어스렁거리는데, ‘광장시장’이라는 간판이 붙은 큰 골목이 보인다. 바로 골목안 왼쪽 옆으로 포목점들이 보이는데 ‘수의’라고도 썼다. 그러자 연로하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 여든여섯, 여든하나, 연세가 깊다. 어머니는 그래도 건강하신 줄 알았는데 최근 들어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 아버지는 7,8년 됐나, 몸 두 군데에 암이 동시다발, 수술 후 항암치료 받고 매일 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으셨다.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데 들어와 보란다. 수의는 요즘 국산 베는 찾기 힘들고 중국산 베가 싼 건 한 이십만원도 하고 칠팔십만원이면 좋은 걸 살 수 있다 한다. 삼베라면 티비에서 아주 비싼 데다 바가지 쓰기도 다반사라고 들은 터였는데, 이 정도면 감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파는 사람도 나쁘지 않아 보여 내심 가까운 시일에 여유가 생기면 찾아보리라 한다.

기왕 시장골목 들어온 김에 좀 구경이나 하자 하고 몇 걸음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른쪽에도 포목점이 붙어 있다. 그중 하나는 삼베만 쌓아 놓았는데, 가지런하기가 앞서 가게 하고도 영 다르다. 그 삼베들 참 좋다 하고 감탄을 하고 섰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볼 게 있으면 들어가 보란다.

등 떠밀려 들어간 격, 엉거주춤 하는데 가게 안쪽에 한 노인이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다. 고향이 어디냐고, 수의는 제 지방 것을 써서, 호남 사람은 보성 베를 쓰고 충청도 사람은 서산 베를 쓴단다. 하필 아버지 고향이 서산이다. 대답을 하면서도 눈은 두리번거려지는데, 이 가게는 아까 가게와도 달라서 삼베만 있다. 그렇다고 한다. 국산 베만 취급한다는 것이다.

‘갖은 수의’라고 쓴 목록을 보니, 망자에게 입힐 것이 많기도 많다. 또 망자를 위한 베는 넉넉하게 써야 해서 키보다 십 센티는 크게 잡아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수의를 해 놓으면 오래 사신다는 말도 떠오르고, 새삼 생각나는, 하필 내가 장남이라는 사실. 중국 베도 어떻겠냐만, 말씀하시는 분이 보통 사람 같지 않고, 이미 팔십줄, 세상 속이며 살 연세도 아니다.

언제 해도 할 것이라면, 하는 마음으로 예약을 해버린다. 며칠 후면 목돈이 나가야 하겠지만 마음은 한결 더 편해지는 것 같다. 사람이 나고 떠나는 일만큼 귀한 사건이 없다. 마음의 준비를 두고두고 해야 한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