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 가 흰 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불러요.”

오월이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입니다. 앞의 두 소절을 부르면 나는 단박에 오십년 세월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달려가곤 하지요.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면 식구들은 모두 들일 나가고 외양간 누렁이만 목을 빼고 나를 기다렸지요. 보리밥 한 덩이 우물물에 말아 먹고는 누렁이를 몰고 나가는 게 내 몫의 일과였어요. 풀이 많은 산자락에 누렁이를 놓아주고 나는 망태기 가득 꼴을 베지요. 여남은 살 소년이면 벌써 낫질이 익숙해져서 망태기 하나쯤 금방 채울 수 있었지요.

꼴을 다 베고 나면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 가 흰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누렁이는 어쩌느냐고요? 요령(워낭)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멀리 가지는 않았네요. 요령소리가 가물가물 멀어지면 그 때 쫓아가서 붙잡으면 되니까요.

잔디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의 후반처럼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랐’거나 ‘즐거워 즐거워 노러를 불렀던 것 같지는 않네요. 그냥 멍하니 미루나무 끝에 걸린 구름이나 쳐다보았던 것 같네요. 뻐꾸기소리 요령소리에 귀를 열어 놓고요.

“보리밭 물결을 스치며 부는/ 오월의 훈풍이여 우거진 신록이여/ 푸를 대로 푸르른 하늘 저 편에/ 하얀 구름이 꿈처럼 인다.”

봄이면 들판이 온통 청보리 물결이었지요. 논이건 밭이건 놀리는 일 없이 보리나 밀을 심었거든요. 그러고도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월은 보리가 패고 익어가는 계절이지요.

초록 물결 넘실대는 보리밭 귀퉁이에는 샛노란 배추꽃이나 밤송이 같은 파 장다리꽃이 피기도 했지요. 그 위로 노랑나비 흰나비가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풍경은 미술시간에 즐겨 그렸던 소재였지요. 그 때 그렸던 그림이야 남아있지 않지만 그 풍경의 기억만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네요.

시골 소년에게 오월의 보리밭은 낭만적인 풍경은 아니었지요. 머지않아 보리 베기와 타작이라는 고된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보리를 베고 타작하는 일은 농사일 중에서도 그중 고된 일이지요. 하지만 산천이 짙푸르게 녹음으로 짙어가는 오월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은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기대만큼이나 선명한 빛깔이었습니다.

꽃으로 치자면 오월은 아카시아꽃의 계절이지요. 장미의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안개처럼 산자락을 온통 뒤덮는 아카시아꽃을 당할 수야 없지. 멀리서는 그저 뿌옇게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카시아꽃은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고 향기도 진하지요.

마침 찔레꽃까지 거들어서 꽃향기 가득한 오월의 동구 밖 과수원길 저 끝에서 단발머리 여학생이 오고 있네요. 남녀 공학인 시골 중학교에 같이 다니는 이웃마을 소녀지요. 까까머리 소년은 길모퉁이에 숨어서 소녀를 기다렸다가 스무 걸음쯤 다가왔을 때 앞서서 걸어가지요. 소년이 아무리 태연하게 우연인 척을 해도 사실은 아침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소녀가 모르지 않지요. 그렇게 날마다 저만치 떨어져서 등교를 하면서도 끝내 둘이는 말이 없었지요. ‘얼굴 마주 보고 싱긋’ 웃었다면 그것은 대단한 사건이고 친밀감의 표현이지요.

아아, 눈부신 생생초록 오월은 다시 왔지만 그 때 그 시절은 저만치 더 멀어져 가네요.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먼 하늘만 눈에 차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