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과 로맹 가리의 삶

▲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단편 소설은 그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새들은 페루의 리마 근처의 해안까지 날아와 퍼덕이다 죽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어떤 것들은 이유가 없는 것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기어이 이유를 알고자 한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단편 소설은 그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새들은 페루의 리마 근처의 해안까지 날아와 퍼덕이다 죽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어떤 것들은 이유가 없는 것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기어이 이유를 알고자 한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로맹 가리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외교관이다. 잘 알려진 소설로는 ‘하늘의 뿌리’(1956)와 ‘자기 앞의 생’(1975)이 있다. ‘하늘의 뿌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공쿠르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공쿠르상은 기수상자에게 다시 상을 주지 않지 않지만 로맹 가리는 ‘자기 앞의 생’으로 이 상을 한 번 더 받았다. 왜냐하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것을 몰랐다가 그가 자살을 한 후에서야 이 사실이 밝혀져 프랑스 문학계를 두 번의 충격에 빠뜨렸다.

소설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무언가를 쓰지 않고는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자신이 아닌 서술자로 불리는 무언가가 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내밀한 유년을 자전적 소설 형식으로 썼다. ‘새벽의 약속’(1960)은 그런 책이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로맹 가리이기보다는 자신의 어머니다. 어머니와의 일화는 낯부끄러운 일들로 가득한데도 로맹 가리는 그 치부들을 한겹 한겹 벗겨내고 있다. 이런 일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보다 더 끔찍한 일인지도 모른다. 끝까지 가야 하는 이야기, 자신을 발가벗겨야 하는 일이 소설가의 일이라면 로맹 가리는 누구보다 훌륭히 그 일을 해내고 있다.

어머니와 관계된 수많은 에피소드 중 로맹 가리는 한 일화를 소개하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른다”라고 쓰고 있다. 왜냐하면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이웃들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그들을 층계참으로 불러내고선 “높고도 자랑스러운 선언”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 선언의 내용은 이런 식이다.

“더럽고 냄새나는 속물들아! 감히 너희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거란 말이야. 입센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될 거라구! 내 아들은…(중략.). 내 아들은 런던식으로 차려입고 살 거야!”(50면)

“런던식으로 차려입고” 산다니, 그걸 사람들 앞에서 소리치다니, 이 글을 읽는 나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반복된다면 얼마나 쪽팔릴까? (이럴 때는 ‘부끄럽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비속어이긴 하지만 ‘쪽팔리다’는 말이 제격이다. ‘쓰레빠’와 ‘슬리퍼’가 결코 같을 수 없듯이 말은 표준어로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며 로맹 가리는 자살을 꿈꿨다고 한다. 이층 높이만큼 장작을 쌓아둔 곳으로 가서 장작을 하나씩 빼내어 통로를 만들고, 아무도 찾을 수 없고 들어올 수 없다는 느낌을 느낄 만한 곳에 이르러 오래도록 머물며 오래오래 울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여덟 살의 일이다. 그리고 어느 날은 “모든 것을 끝장내기 위하여, 죽은 나무로 된 나의 성채가 내 위로 단숨에 무너져 나를 인생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장작을 뽑아낼 작정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부분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장작을 밀어낼’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호주머니 안에 오늘 아침 빵집 골방에서 훔친 양귀비 과자 조각이 들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 빵집은 우리 집과 한 건물에 있었는데, 그 집 주인은 손님이 있을 때면 골방을 비운 채 비워두곤하였다. 나는 그 과자를 먹었다. 그런 다음 다시 나는 자세를 취하였고, 큰 숨을 내쉬며 밀 준비를 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구했다.

갑자기 그놈의 콧마루가 장작 사이에서 내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중략…

그놈은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더니, 조금치도 망설이지 않고 내 뺨을 핥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갑작스런 애정의 동기에 대해 전혀 환상을 품지 않았다. 아직 내 뺨과 턱에 눈물에 젖어붙은 양귀비 과자 부스러기들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애무는 매우 타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내 뺨을 핥는 깔깔하고도 따뜻한 혀의 감촉은 나로 하여금 황홀해서 미소 짓게 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내버려두었다. 그 후,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도 그랬지만, 그때에도 나는 내게 보이는 애정의 표시 뒤에 정확히 무슨 일이 개입하고 있는지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여기 다정함과 동정의 모든 외양을 갖추고 내 얼굴 위를 이리저리 열심히 핥고 있는 따뜻한 혀의 다정스런 콧잔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게 그 이상의 것은 필요치 않다.

고양이가 핥기를 끝냈을 때 나는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 세상은 아직도 가능성들을, 결코 하찮게 여길 수 없는 우정들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고양이는 옹알거리며 내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놈의 옹알거림을 흉내내려 애썼고, 우리는 서로 다투어 옹알거려가며 썩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과자부스러기를 긁어 모아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흥미를 보이더니,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내 코에 몸을 기댔다. 놈이 내 귀를 물었다. 간단히 말해, 인생은 다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되었던 것이다. 오 분쯤 뒤에, 나는 나무로 된 내 성 밖으로 기어나와 집을 향해 갔다. 손은 호주머니에 찌르고 휘파람을 불며, 꽁무니엔 고양이란 놈을 달고서.

그 후 난 언제나 생각해왔다. 사는 동안, 만일 진정 순수하게 사랑 받고 싶거든 얼마간의 과자 부스러기를 지고 있는 것이 좋다고”(51~52면).

죽기를 결심했던 로맹 가리는 고양이가 자신의 얼굴을 핥았다는 사실 때문에 죽기를 멈춘다. 어떤 거룩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얼굴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한 고양이의 행동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대단한 계시나 기적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에 지날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일 만큼 힘들게 만드는 일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죽고 사는 일은 허약한 기반 위에 아주 간신히 머물고 있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삶이 너무 허무하고 공허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로맹 가리의 처방은 간단하다. 어떤 행위 뒤에 내재한 정확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행위에 집중하라는 것. 비록 고양이가 양귀비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자신을 핥았지만, 그러한 논리적 인과보다는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다정함과 동정”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라고 로맹 가리는 말하고 있다.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우리가 생각하는 논리적 이유라는 것은 인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은 늘 그런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어 끝 간데 없이 진행된다. 그런데도 인간은 사건의 일부만을 발췌하여 그것이 사건의 시작이자 끝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리하여 그 사건에 쉽게 패배한다. 인간은 결코 패배하지 않지만, 패배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인간 수준의 논리일 뿐 인간은 아니다.

고양이의 “깔깔하고도 따뜻한 혀의 감촉”에서 살아갈 희망을 찾았던 로맹 가리는 1980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은 진 세버그와 밀접한 관련 있는 듯하다. 로맹 가리는 24살 연하의 진 세버그와 1963년에 결혼하여 1968년 이혼하지만 둘의 관계는 계속이어진다.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의 관계에 대해서 “도울 수도 변화 시킬수도, 결별할 수도 없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우린 이혼이 갈라 놓기에는 너무 가깝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 세버그가 자살로 발견된 뒤 로맹 가리는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하다. 그가 ‘자기 앞의 생’에서 했던 이런 말처럼.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