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세상이 온통 ‘몰상식’으로 넘쳐난다.

‘한미군사훈련’을 용인한다던 북한의 생트집 뒤집기 버릇이 도졌다. 경찰이 굼벵이수사로 증거인멸 시간을 한껏 벌어준 ‘드루킹’ 사건을 파리 한 마리에 비유하던 집권여당은 ‘특검’ 이슈 앞에서 하염없이 잔꾀를 부리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뛰쳐나와 ‘총수 퇴진’을 외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온 대한민국을 지탱해주는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상식(常識)’이다. 우리가 가진 상식 중의 으뜸은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을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 삼은 탁월한 선택이 오늘날 이 나라의 번영을 담보해왔다.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으로부터 직접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4월에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감동적인 약속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일부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굳이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꺼내지 않은 것은 앞으로 남한 내의 진보좌파들이 대신 해결해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걷어찬 것이 태영호 전 북한공사가 출간한 책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태영호를 추방하자’는 청원이 나돌기 시작했단다.

경찰이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내기 위해 전전긍긍이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 정부여당이 진력하고 있는 시점에 태영호 전 공사가 책을 펴내어 북한 권부의 실상을 까발리고, 대북 전단지를 굳이 날려보내는 일이 야속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추방하자고 외치거나, 힘으로 막아서는 일은 자유민주주의 상식에 어긋난다.

2016년 4월 집단 탈북한 북한식당 여성 종업원들의 탈북이 국정원의 기획탈북이었다는 폭로가 나온 후 통일부의 말이 확 바뀌었다. 탈북종업원들과 북한에 억류 중인 우리 국민 6명의 교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그 일이 정권을 위한 국정원 공작의 결과물이었다면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통일부의 입장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는 건 납득이 안 간다.

상식에 안 맞는 현상들 중에 ‘드루킹 사건’보다 더 야릇한 일은 없다. 드루킹이 한 언론사를 통해서 ‘탄원서’라는 이름의 폭로폭탄을 터뜨렸다. 검찰마저 “드루킹 등이 작년 1월경 ‘킹크랩’을 구축한 후 이때부터 뉴스 댓글 순위를 조작해 여론이 왜곡된 사태가 이 사건의 실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청와대는 아직도 “정부여당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대한항공(KAL) 직원들이 도심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경영권 박탈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물벼락 갑질’ 논란 이후 사법기관과 언론이 이 잡듯이 찾아내고 있는 대한항공 사주일가의 ‘갑질’ 행각은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직원들이 길거리에 나서서 ‘사주 퇴진’을 외치는 일은 ‘자본주의’의 기본질서에 부합하는 일이 아니다.

상식이 이렇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북한이 교졸하고 어이없는 핑계로 국제합의를 순식간에 뒤집어엎은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성과에 갈급한 나머지 북한에 무한정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댓글 조작으로 국민여론을 오도한 사건을 왜곡하여 오만가지 궤변으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정치는 삼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포퓰리즘 강풍은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 비상식의 난장(亂場),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이 난세(亂世)를 위탁한 민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