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사람이 호랑이를 죽이는 걸 스포츠라 하고 호랑이가 사람을 죽이는 걸 재앙이라 한다. 범죄와 정의의 차이도 이와 비슷하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평론가인 버나드 쇼가 한 말이다. 요즘 드루킹 사건을 보노라면 바로 이같은 범죄와 정의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눈높이와 다른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드루킹 사건은 세계에서 인터넷망이 가장 발달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온라인 여론조작 사건으로 기록될 듯하다. 여야 합의로 세운 드루킹 특검이 얼마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 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드루킹 특검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현직 의원이 ‘경공모’(경제공진화 모임)등의 사조직에 의뢰해 하루에 수 백 건 이상의 기사에 호의적인 댓글을 다는 작업을 조직적으로 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현 정부는 여론조작이란 범죄행위로 상당한 도덕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조작은 치명적인 범죄다. 국민의 뜻이 왜곡되고, 왜곡된 뜻에 따라 권력의 향방이 정해졌다면 어찌 큰 일이 아니겠는가.

드루킹 사건이 처음 시작될 때는 순수한 ‘자원 봉사자의 지원행위’에 불과했을 수 있다. 헌정 사상 이런 류의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었고, 범죄로 구속되거나 처벌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론조작사건의 장본인인 드루킹 자신도 ‘문제는 있지만 뭐 그리 큰 죄가 될까’하는 마음을 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같은 인식의 차이는 얼마 전 방영된 ‘썰전’에 나온 유시민 전 장관과 나경원 의원간 토론에서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유 전 장관은 그동안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보진영을 대변해 왔는데, 이날은 드루킹 사건을 허구라는 주장으로 매우 편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자리에서 나경원 의원은 “드루킹 사건은 국정원 댓글사건보다도 더 무서운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만약에 민주당이나 김경수 의원이 조직적으로 이 일에 연관이 돼 있었고, 지난 대선 당시 범행방법이 매크로를 사용한 불법행위였다면 그건 명백한 여론조작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유 전 장관은 “이런 게 바로 ‘3라면’ 논평”이라고 폄하하면서 “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면, 드루킹에게 대가를 지급한 것이라면, 매크로를 이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인데, 세 종류의 라면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로 주장이 다른 만큼 그래서 특검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나 의원의 말에 유 전 장관은 시니컬하게 “한국당은 그러면 좋겠죠”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드루킹 사건은 이미 보도된 내용만으로도 국민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김경수 의원이 ‘홍보해주세요’라고 하자 드루킹이 ‘처리하겠습니다’ 하는 등 시그널 메시지 30여건 대화를 추가확인했다는 언론보도만 봐도 김 의원의 드루킹과의 연관성은 부인하기 어려워보인다. 더구나 드루킹이 주도했던 ‘경공모’는 경선장마다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고, 민주당의 온라인 대응활동을 자신들이 대신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바 있고, 회원들이 24시간 교대로 하루 700건 이상의 기사에 댓글을 다는 활동을 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드루킹에게 대가를 지급했느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드루킹 운영비가 연 11억원에 달해 경찰이 자금출처 추적중이라니 조금 더 지켜보면 알 수 있을 듯 하다. 매크로 조작이 이뤄졌는 지 여부도 경찰의 확인작업이 진행중이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게임의 사냥과 아이템 확보, 아이돌 콘서트 공연이나 야구장 티켓 구매를 위해 암표시장에서 주로 쓰였던 매크로가 댓글 추천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때 누구에겐가는 정의로운 행동이었을 드루킹의 활동이 어느 순간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범죄로 바뀐 사태를 보며 버나드 쇼의 날카로운 통찰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