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홍 섭

남들 회사갈 때

나 절에 간다

내 거처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언덕 한켠

나의 본업은

밤새워 내리는 밤비를

요사채 뒤뜰 항아리에 가득 담는 일

하지만

내리는 밤비는

항아리를 채우지 못하니

나의 부업은

나머지 빈 곳을 채우는 일

나는

항아리를 껴안고

비 내리는 꿈속을 헤맨다

시인의 몸과 영혼은 성(聖)도 아니고 속(俗)도 아닌 경계선의 언덕 쯤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구도(求道)의 자세가 얼마나 겸허한가를 느낄 수 있다. 그가 껴안고 채워나가길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으로서, 구도자로서의 끝없는 목마름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본업이자 부업인 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