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선애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 임선애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5월은 감사의 달이다. 수많은 인연들 중에 우리 집에 태어나줘서 고마운 아이,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우리를 세상과 연결시켜주고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붓는 그들 앞에서 무릎 꿇고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뿐, 다른 어떤 것도 없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이 자식에게 주는 사랑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동요의 가사처럼 부모님의 은혜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동요의 가사가 뼈에 사무치도록 가슴에 와 닿으려면, 적어도 자식을 낳고 길러 봐야만 알 수 있다고 한 사람들의 말이 생각난다. 아이를 길러본 사람이나, 아이를 기르는 것을 지켜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아기가 태어나서 제대로 몸을 가누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그나마 할 수 있도록 돌보는 데만도 부모의 엄청난 희생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간의 본성 중에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라는 성정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 인간을 길러내는 데는 우주를 창조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 위대한 희생과 사랑 앞에서 빚쟁이가 아닌 자 누구이겠는가.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위대함 앞에서 고마움을 잊은 채, 간혹 물질적인 잣대로 부모님의 사랑을 재는 경우도 있다.

이청준의 ‘눈길’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나’가 그런 인물이다. ‘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물질적으로 해 준 것이 없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한 푼의 빚도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와 군영 3년을 치러 내는 동안 노인은 내게 아무것도 낳아 기르는 사람의 몫을 못 했고, 나는 또 나대로 그 고등학교와 대학과 군영의 의무를 치르고 나와서도 자식놈의 도리는 엄두를 못 냈다. 노인이 내게 베푼 바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처지가 못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형이 내게 떠맡기고 간 장남의 책임을 감당하기를 사양치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 ‘나’는 넉넉하던 살림을 다 말아먹고 죽은 형에 비해서 자신은 아무런 물질적 혜택을 받은 것이 없고, 더구나 형의 죽음 이후 형수와 형의 자식들도 돌보아야 하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진 빚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쓰러져가는 집을 새단장하고 싶고, 단칸방 신세를 면하고 싶어 하지만 주인공 ‘나’는 어머니에게 진 빚이 없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소망을 외면한다.

‘이 노인이 쓸데없는 소망을 지니면 어쩌나.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무엇보다도 나는 노인에 대해서 빚이란 게 없었다. 노인이 그걸 잊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들에게 섣부른 주문을 내색할 리 없었다. 전부터도 그 점만은 안심을 할 만한 노인의 성깔이었다.’

아들에게 해 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엇을 바라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푸념조로 하는 소망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이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는 채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눈길에 대한 이야기를 엿듣는 장면을 설정하고, 주인공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세상에는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많아서 자녀들에게 주는 것이 많은 부모도 있지만, ‘눈길’의 주인공 어머니처럼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어서, 아무 것도 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들도 있다. 정말 아무 것도 주지 않았을까?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것만으로도 크신 희생과 사랑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우치지 말자. 아낌없이 주는 사랑 앞에서 무조건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