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서예가

사람들은 한 해가 바뀌거나 어떤 일의 계획을 세우고는 그 목적달성을 위해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되새기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게 마무리하는 초심(初心)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이처럼 처음 마음먹었던 일을 끝까지 해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기에 자신에게 한 약속이나 각오를 끝까지 지켜나간다는 사자성어가 ‘초지일관(初志一貫)’이며 유사 성어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는다는 시종일관(始終一貫)이 있다.

맹자 등문공 하(騰文公 下)의 이른바 호변장(好辯章)에 ‘작심(作心)’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그 마음에 일어나서 그 일을 해치고, 그 일에 일어나서 그 정치를 해친다.’ 작심은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억지로 하기 싫은 것을 의식적으로 일깨운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만들어진 사자성어가 ‘작심삼일’이다. 이 작심이란 말은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사흘을 두고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비로소 결정을 보았다는 신중성을 의미하고 있는 경우와, 삶의 목표를 정하고 마음에 품은 계획을 성공시키려 마음을 단단히 먹기는 했지만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그 결심이 흐지부지되고 만다는 뜻으로 쓰인다. 대개의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후자의 작심삼일을 경험했을 것이다.

조선후기 문인이면서 천주교인이었던 강이천(1769~1801)선생은 그의 저서 ‘중암고’에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을 욕망이라 하고, 제일 좋은 것은 인내’라 기술했다. 또한 그는 ‘내가 어릴 적에 들은 얘기로 도깨비는 식성이 두꺼비를 엄청 좋아하지만 두꺼비를 먹으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두꺼비를 볼 때마다 울면서 잡아먹고, 먹고 나서 죽는다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크게 웃으면서 생각하기를 먹는 것이 좋기로 과연 그 목숨과 바꿀 정도란 말인가'했다. 하지만 중암은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특히 벼슬아치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에게는 욕심이 있다. 욕심은 나쁜 것이니 아예 차단해야 한다는 종교적 입장도 있지만 욕심이라고 반드시 다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좋은 뜻을 이루려는 마음의 욕심은 욕(欲)이라 썼고, 이기적인 나쁜 욕심은 욕(慾)이라 써서 구별하였다. 욕망(慾望)으로 가득 찬 위정자들은 초심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작심하다 권력을 쥐고 시간이 흐르면서 부귀와 영욕에 취해 권력을 남용하고 갑질하거나 전쟁을 일으켜 그 나라를 망하게 하고 술과 여색으로 자기 몸을 망치는 자들이 세상에 즐비하다.

이렇듯 눈앞의 영화와 쾌락 때문에 나라와 자신을 망치는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욕망을 참지 못하고 두꺼비를 잡아먹는 중암이 생각하는 도깨비와 같은 부류들인 것이다. 후한의 학자 왕충의 ‘논형(論衡)’이라는 책에는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름철의 화로와 겨울철의 부채라는 뜻이니 때에 맞지 않아 쓸모없는 사물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겠다. 그렇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동로하선(冬爐夏扇)’ 즉 겨울철의 화로와 여름철의 부채가 된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위해 요긴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는 인재인 것이다. 정치에서 요직에 쓸 수 있는 이러한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한 국가의 부흥을 이룰 수 있다.

코드인사나 패거리 정치에서는 잘못하면 초심이나 작심을 망각한 간신들이 설치기 쉽다. 면면을 보면 이런 부류의 간신이 한 명만 득세하더라도, 작게는 대통령이나 크게는 그 나라를 망치고도 남을 만하다. 유종의 미가 없는 우리나라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을 비롯해서 실세로 지목받던 이들이 하나같이 수형복을 입어야 하는 슬픈 현실을 국민들은 보고 있다. 국민의 부름을 받고 취임한지 1년이 된 문재인 대통령은 8일 국무위원들에게 초심을 지켜나가자고 당부했다. 한 정권이 끝나면 재판대에 서야하는 슬픈 역대 정부를 반면교사삼아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새겨들을 당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