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형 도

열무 삽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열무 삼십 단을 팔러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어두운 방에 찬밥처럼 남겨진 아이는 숙제하며 엄습해오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잊으려하지만 내리는 빗소리는 그런 분위기를 더 심화시키고 있는 젖은 풍경을 본다. 이 땅 어디서나 있었을 법한 가슴 아픈 서사다. 가난과 궁핍의 지난 유년시절을 추억나게 하는 눈물겹고 가슴 아픈 서정의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