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득편집부국장
▲ 김명득편집부국장

평소 철강 본원의 경영을 중시해온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최근 돌연 사임의사를 밝혔다. 갑작스런 사임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사임배경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권 회장은 정치권의 외압이 없었다고 부인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의 수장은 어김없이 물러나는게 이제 관행이 된듯 하다. 정부 지분이 1주도 없는 민간기업 포스코가 마치 공기업인양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이어 문재인 정권에서도 예외없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포스코 회장 수난사는 지배구조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권 회장의 퇴진은 보이지 않는 외압과 국세청, 검찰, 경찰 등 사정당국의 전방위 압박, 일부 언론의 악의적 흠집내기 등이 어우러진 합작품으로 보여진다. 국세청은 조사4국을 동원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였고, 그가 하려는 사업마다 제동을 걸었다. 권 회장이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해온 리튬 등 희귀자원 해외투자에 대해서도 친여성향의 언론이 거대한 부실투자로 몰아가며 연일 지면을 도배질했다. 자원사업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언론들이 정권과 코드를 맞춰 편파보도를 일삼아 온 것이다. 권 회장이 겪은 수모는 그 뿐이 아니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함께 나가는 해외순방에도 그는 동행하지 못했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이사회 결의사항을 대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공시까지 했는데도 검찰은 권 회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누구라도 이런 압박을 받게 된다면 손을 들지 않고 견딜수 있겠나 싶다.

권 회장도 아마 참을만큼 참았을 것이다. 위기에 처해 있던 포스코를 다시금 제자리에 올려놓은 이 시점을 용퇴하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으로 본 것이다. 지난 1일 창립 50주년 미래비전선포식에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다함께 전진하자고 외쳤던 그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자리를 떠나려하는지는 어쩌면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정권에 맞설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풀어 말하면 정준양 전임 회장처럼 기소와 재판 등 온갖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권 회장은 재임기간 준수한 경영실적을 보였다. 전임 회장 시절 방만했던 경영을 대수술했다. 비주력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71개사에서 38개사로 덩치를 줄였고, 적자를 기록했던 재무구조도 흑자로 전환시켰다. 1조원 가량이던 유보금도 7조원대로 늘렸고, 분기당 1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부채비율도 67%로 2010년이후 가장 낮게 유지하는 데 앞장 서 왔다.

이제는 차기회장에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누가 될지는 오리무중이다. 포스코 내부출신이냐, 외부 ‘캠코더’(문재인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인사인지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내부가 아닌 외부출신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면 포스코는 또다시 경쟁력 약화와 외풍에 흔들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회장 퇴진문제를 개선하려면 외풍을 막아내는 확고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니다. 새 회장을 뽑는 ‘CEO승계 카운슬’이 가동에 들어갔다. 새 회장을 뽑는 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임과정의 일부를 공개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여론에 권 회장도 사실상 후임자 선임에서 손을 뗐다. 고무적인 일이다.

포스코가 흔들리면 국가경제는 물론 철강업계, 지역경제에까지 영향이 일파만파로 미치게 된다. 지역민들도 권 회장의 퇴임을 안타깝게 보고 있다. 포스코가 약속한 1조원의 ‘통큰’지역 투자도 혹여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당당하게 홀로 서는 포스코의 모습을 기대할수록 권오준이 마지막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