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중도하차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지난 18일 임시이사회에서 사의를 밝혔다. 국영기업일 때나 민간기업일 때나 포스코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는 번번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권 회장은 2020년 3월까지의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떠나 정치적 외압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민간기업 포스코가 진정한 유수 국제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 CEO의 임기를 보장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권 회장은 이날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100년 기업 포스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인재가 CEO를 맡는게 좋겠다”며 사내외 이사진들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권 회장은 사임 결정에 정치적 외압이나 외풍은 없다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이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포스코 회장의 중도하차 흑역사는 처참하다. 포스코 설립 이후 민영화 이전 5명의 전 회장들을 포함 모두 8명의 회장이 역임했지만 권 회장까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임기 도중에 하차했다. 정치 세력이 포스코를 정권 획득의 전리품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처럼 포스코 경영진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이면에 권력에 빌미를 주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주목할 필요는 있다. 출발점이 정치권력과 유착되면 기본적으로 권력에 휘둘릴 조건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이지 않는 칼이 움직일 것이고, 결국은 바람을 견디기 어려운 악순환 구조가 되고 마는 것이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정부가 지분을 전량 매각함으로써 ‘국민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CEO 선임과 사임 행태를 보면 영락없는 ‘적폐’ 수준이다. 민간기업의 총수 자리를 정권이 좌지우지하는 선진국은 지구상에 있지 않다. 포스코 경영진이 권력 앞에서 맥을 못 추는 현상이야말로 이 나라 민주주의의 미성숙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포스코의 향배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포항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50주년을 맞은 포스코와 포항시가 이달 초 협약한 6개 사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다. 정치권에 한없이 휘둘리는 ‘포스코 잔혹사’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지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포스코의 경영이 정권교체기만 되면 어김없이 바람 앞의 등불이 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직 경영적 성과와 세계굴지의 철강회사로서의 비전만으로 경영이 추구되는 안정적인 포스코가 돼야 한다. 차제에 그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권부터 포스코의 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해 완전히 놓아주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