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핀이 그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유배를 당했던 남자가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가 떠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 없는 생활에 아내는 익숙해져가고, 막내딸은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돌아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던 남자가, 이제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 가정에 불쑥 찾아왔다.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고 아무도 감격하지 않는다. 사건은 이와 같이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그 사건을 이해하기까지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속된다. 사건에 대한 이러한 반응! 사실 속에는 이런 진실된 순간이 깃들곤 한다.
▲ 레핀이 그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유배를 당했던 남자가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가 떠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 없는 생활에 아내는 익숙해져가고, 막내딸은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돌아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던 남자가, 이제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 가정에 불쑥 찾아왔다.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고 아무도 감격하지 않는다. 사건은 이와 같이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그 사건을 이해하기까지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속된다. 사건에 대한 이러한 반응! 사실 속에는 이런 진실된 순간이 깃들곤 한다.

△사실주의 화가 일레야 레핀

최근에 일레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이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유화를 배우기 위해 다녔던 화실, 그 화실의 선생님이 다녔던 학교가 레핀대학이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그때는 뭉툭하게만 들렸던 소리가 이제야 분명한 형체를 지닌 말로 환원되어 들을 수 있게 된다.

레핀은 1844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1860년대까지는 그림 공부를 했다. 1870년대로 접어들면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1870~1873)이 있다. 이때부터 대가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하여 1880년대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1884~1888),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1884~1885) 등의 작품을 그렸다.

여기에서도 드러나지만 레핀은 한 주제의 그림을 오랫동안 그렸다. 한 작품만 그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이렇게 저렇게 바꾼 것이다. 이를테면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이 서 있는 그림이 널리 알려졌지만,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어 그린 것도 있다. 또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은 사실주의풍으로 그리기도 했지만 인상주의풍으로 그린 것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레핀은 분명 사실주의 화가다.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은 레핀이 유학을 떠나기 전 볼가 강에서 직접 목격한 인부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건 분명 사실주의 그림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레핀이 직접 본 것은 아니다. 유배를 떠났다가 돌아온 남자, 이런 갑작스러운 사건를 레핀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상상을 통해 구현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1581년 11월 16일’은 역사화로, 부제에 붙은 연도는 이 사건이 일어났던 때다. ‘뇌제’란 네로나 걸주와 같은 폭군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해서, 번개같이 무섭고 두려운 왕을 한층 더 강조하는 일본식 번역어다. 이 작품은 이반 뇌제가 화를 참지 못하고 아들을 죽인 사건을 그린 것이다. 삼백 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을 레핀이 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보자면 자신이 직접 본 것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이것만이 사실주의인 것은 아니다. 보진 못했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그리는 것도 사실주의다. 또한 자신이 직접 보지 못했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법한 일을 그리는 것도 사실주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인상주의풍으로 그려도 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여기에서 물어야 할 것은, 도대체 사실주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사실주의라는 태도

대학 다닐 때 유일하게 열심히 읽었던 책, 루카치의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을 떠올려본다. 루카치는 사실주의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먼저 최대한 대상과 가깝게 표현하는 것, 즉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 다음으로 비판적 리얼리즘,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것이다.

이렇게 분류하긴 했지만, ‘리얼하게 그릴 것’이라는 정의는 ‘사실주의’가 아니라 ‘사실화’에 대한 정의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반적인 정물화의 경우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했다고 ‘여긴다’. 중요한 것은 정물화를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지 정물화를 사실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정물화는 대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추상화가나 입체파화가, 심지어는 초현실주의화가들 역시 자신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고 할 테니까 말이다.

마네는 튈르리에서 있었던 음악회에 참여한 사람을 중심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르누와르는 보트에서의 점심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렸다. 인상주의 화가들 역시 사실을 그렸지만 우리는 이들을 사실주의화가라 부르지 않는다. 사실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여기는 것들, 즉 ‘사실적’인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정물화, 그리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것들을 일컫는다.

사실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것이 ‘주의’ 즉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사실주의는 필연적으로 정치성을 띤다.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특정한 정치적 경향성을 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주의가 말하는 ‘정치성’이란 무엇인가?

보트에서의 점심식사를 르누아르처럼 표현한다고 해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보라고 하지만 그 순수라는 말 역시 정치적이다. 한때 횡행했던 말,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이 말은 세월호를 정쟁화했을 때 타격이 큰 정치세력이 퍼뜨린 정치공세였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은 얼마나 정치적인가!

그러니 정치적이라는 말을 엄밀히 사용하려면 특정한 정치성을 띤다고 말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정치성을 당파성이라고 부른다. 당파성이란 사실주의가 나아가야 할 정치적 방향을 말한다. 비판적 리얼리즘은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점을 비판하고 이를 폭로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 이후 도래할 사회를 제시하고자 한다. 비판적 리얼리즘이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든 이들은 자본주의에 모순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띠며, 이것이 사실주의의 방향성과 일치한다.

여기에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현실적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먼저라는 것이다. 본래부터 현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자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호를 사고가 났던 시점과 사고가 난 이후로 분리해서 바라본다면, 그래서 사고가 난 이후 정부의 대책과 대응을 세월호 유가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문제는 곳곳에서 도출된다.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르누아르처럼 보트에서의 점심식사를 보고 그린 후 ‘보트에서의 오찬’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지만, ‘세금도둑들’이라는 표제를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동일한 대상을 그리더라도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대상은 달라진다. 그러므로 사실주의는 관점의 문제이며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르누아르처럼 세상을 예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이러한 태도가 곧 사실주의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실주의가 드러내는 사실은 엄밀히 말해 특정한 사실이다. 사실주의가 태도의 문제라고 했을 때 그것은 엄밀히 말해 특정한 태도다. 현실에 문제점이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하며 그러한 문제점을 ‘사실’이라고 말하며, 이러한 사실은 잘못되었으며,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사실주의의 ‘태도’다.

사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라고 부른다. 허나 사실주의의 시각 역시 하나의 시각이며, 사실주의의 태도 역시 하나의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간과한 채 사실주의만이 ‘깊이’를 가진다고 말할 때 예술은 종교나 미신의 범주로 전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