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혜명선린대 교수 교육학 박사
▲ 차혜명선린대 교수 교육학 박사

봄은 과연 도시보다 시골에 어울리는가. 아파트의 콘크리트 담장보다 시골집 울타리 곁에 핀 개나리가 백배 아름다우며, 빌딩 숲에 숨죽이며 꽃잎을 연 진달래는 산자락 비탈에 만개했을 때가 훨씬 예뻤을 터이다. 도시에서 맞는 봄은 그 향기도 덜한 것인지 도무지 봄으로 여길 여유조차 발견하기 힘들다. 이럴 땐 어디론가 훌훌 털고 떠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도시민은 세사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공평한 봄 볕과 봄 빛. 그마저도 하기야 도시의 소음에 묻혀, 오늘 하루 그 봄을 느껴보기나 했는지 벌써 아득한 심정. 우리는 어째서 이 봄을 거부하듯 살고 있는 것일까. 무슨 영광을 바라고 봄을 무시하며 뻐기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봄 볕이 내려쪼이듯, 모든 기회가 차별없이 공평했으면 좋겠다. 재벌집 따님이 웬 갑질을 했다는데, 그게 어째서 딴 나라 소리처럼 들리는 것일까. 어떻게 우리는 이걸 당연한 듯 살고 있는 것인지. 법을 어기며 무엇인가를 했다는데,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소리는 혹시나 잘못 들었던 것일까. 그 집 자매가 하나같이 그런 힘을 나누어 가졌다고 했던가. 어째서 법조차 공평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기회가 공평하고 결과가 정의로울 때에 모두가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로 느끼지 않을까. 그래서 한 낮 따사로운 봄 볕에도 배울 게 많은 것이다. 빠짐없이 한결같이 따뜻하게 내려 부으며, 이왕이면 사람들도 서로에게 너그럽기를 넉넉하기를 그리고 한결같기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내가 저 봄 기운이라면.

아마 저 같은 봄 기운은 북녘에도 도착했을 것이다. 두 정상이 만날 일을 준비한다는데, 이들 생각 속에 국민을 헤아리는 마음이 소복하기를 기대해 본다. 둘이 만나 둘만의 영광을 나누면 얼마나 볼썽사나울 것인가. 이제는 겨레의 만남을 이루고 이 땅의 평화가 다가오는 만남을 만들어 주기를 봄 기운과 함께 기대해 본다. 봄은 남과 북을 차별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당신들도 모든 이들의 가슴을 감동으로 적셔낼 준비를 하시길, 봄 볕에 의지해 바라고 싶다.

늘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말았던 우리의 소원이 이 봄에는 조금 더 당겨 보이기를 두 사람의 만남에 기대해 본다. 수십년을 말없이 기다려 준 백성의 마음을 이제는 헤아리듯이, 만남이 평화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이 봄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은 누구나 안다. 한동안 포근하고 따사로울 봄 볕이 이제 곧 불볕이 되고 폭우가 될 것을 이미 아는 것 아닌가. 혹 오늘 행복하다고 자만하지 말 것이며, 혹 오늘 어둡더라도 낙심하지 않기를. 봄이 늘 봄이 아니듯, 겨울도 늘 겨울이 아니었으니. 행복할 때는 부족할 것을 준비하고 모자랄 때는 남을 때를 대비하여야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모든 시간은 흘러흘러 결국은 한 줌 흙으로 남을 것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다만, 오늘 일에 성실하고 오늘 만남에 집중할 때에 오늘 내게 합당한 열매로 돌아오지 않을까, 바라고 기대하며 오늘을 간다. 그래서 흘러갈 봄 기운데도 배우는 것이다. 오늘에 집중하고 오늘에 성실할 것을.

봄 볕이 따뜻한 동안 약속을 하나 했으면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기를, 누구에게나 너그럽기를, 그리고 기다리지 말기를. 차별없는 세상이 이제는 이 땅에 자리를 잡아 함께 사는 세상이 살 만 하기를. 봄 기운에 배운 대로,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헤아리는 마음이 공동체를 이루는 조건이 되기를. 그러므로, 힘들어도 웃을 수 있고 어려워도 기댈 수 있는 넉넉한 이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봄 빛에 드디어 물이 들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