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지원금 380억 환수 앞둔 영덕군은 지금…
천지 1·2호기 조성 예정지
재산권 행사 7년간 제한
가족 사이도 극심한 불화
보상의 형평성 논란까지

▲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원전 정책으로 원전 예정구역의 주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영덕군 천지원전 예정구역으로 고시됐던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일원. /이용선기자

“원전 만든다고 사람들 마음 갈기갈기 찢어놓더니, 겨우 받아들이고 마음 추스르니 또 이 난리를…”

17일 동해안을 따라 난 7번 국도를 벗어나 해안 쪽으로 5분여를 달리자 평화로운 어촌마을이 나왔다. 완연한 봄을 맞아 수려한 경관을 뽐내는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로 들어서자 어딘가 모르게 뒤숭숭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구를 정리하는 어민들과 거리를 지나는 주민들의 근심 가득한 표정 때문인듯했다. 마을회관 앞 평상에 모인 이장과 주민들도 순박한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정부의 원전 지원금 회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마을을 포함해 인근 석리, 매정리, 축산면 경정리 등 4개마을 343만여㎡는 정부가 천지원전 1·2호기를 건설하기로 한 부지였다. 지난 2008년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하면서 추진됐고, 2012년 전원개발사업 예정구역으로 고시돼 소유주들의 재산권 행사가 제한됐다. 주민들은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행위는 물론 토지용도 변경, 리모델링 등에 제한을 받아왔다. 심지어 창문도 함부로 교체하지 못해 겨우내 외풍을 견뎌낸 주민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주민들은 물리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피해를 꿋꿋이 견뎌왔다고 하소연했다.

김재현 노물리 마을 이장은 “처음 원전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듯이 떠나야 하는 상황과 생계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발이 심했다. 보상 등 돈 문제가 걸리면서 주민·마을 간, 심지어 가족 사이에도 불화가 일었었다”면서 “수년 동안 갈등을 겪었는데, 오락가락 행정으로 원전계획을 취소하는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덕군에 따르면 현재까지 석리 6가구만 보상을 받았고, 한수원은 2016년 7월 매입공고를 내고 전체 부지(1천682필지) 중 18.2%(59만여㎡·264필지)를 매입했다. 매입비용은 541억원에 이른다.

김도현 영덕군 새마을경제과 계장은 “원전 건설사업 추진을 찬성한 주민 중 일부만 토지매입에 동의해 보상을 받았다. 원전 무산으로 보상문제가 안갯속으로 빠지면서 다른 주민들과 형평성 논란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김영찬 석리 마을 이장은 “원전을 짓지 않을 거라면 빨리 전원개발사업 고시를 해제하고, 그동안 주민들이 받은 고통에 대한 보상책을 내놔야 한다”면서 “7년 동안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물리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피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주민들을 위한 대책도 없이 이미 지급했던 원전 지원금까지 환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한수원을 상대로 “원전을 짓기로 한 땅을 모두 매입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던 조혜선 ‘천지원전 지주총연합회’ 회장은 정부의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 회장은 “원전 백지화로 발생하는 피해가 확연했는데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부는 천지원전건설 예정지를 원전수출전략지구로 개발하는 등의 대체 사업계획을 하루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정부 지원금 환수절차와 관련해 예정지 주민들을 비롯한 대책위는 회의를 열어 정부청사 집회 등의 집단행동 거취를 정할 계획이다.

영덕군도 초조하다. 피해대응반을 구성하는 등 주민피해보상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정부의 지원금 없이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덕군 관계자는 “현재 천지원전은 전원개발사업 지정이 해제되지 않는 등 행정적으로 잠정중단으로 볼 수 있다”면서 “최근 법제처가 환수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한 것은 영구폐지됐을 경우다. 군도 법리검토를 거쳐 행정소송을 준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영덕군이 지난 2014∼2015년 원전 자율신청특별지원금으로 지원받은 380억원의 환수 절차를 밟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의뢰로 유권해석을 진행한 법제처가 지난 16일 “지원금을 환수할 수 있다”고 통보한 내용이 드러나면서 환수 쪽으로 방향이 기울었다. 영덕군과 군민들은 이 같은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탈원전 2차 갈등’에 불이 붙어 파장이 예상된다.

/안찬규기자 ack@kbmaeil.com

영덕/이동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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