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선애<br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과학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얼마전 VR-홀로그램으로 그리운 할아버지를 만난 장애소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영국 서리주(州)에 사는 11살 소년 해리슨 스미스는 선천적 근육병을 앓고 있는 소년으로,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하다보니 또래들처럼 마음껏 뛰노는 것도 소원이었지만 또 하나의 큰 소원은 자신이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픈 해리슨에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컨디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먼 길을 자주 여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해리슨의 할아버지 앤드류(67)도 직업상 1년 중 절반은 뉴질랜드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손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사정은 아니었다.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가상현실(VR) 헤드셋을 머리에 쓰면 바로 눈앞에 서로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홀로렌즈’(Hololens)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결합한 혼합현실을 구현하는 기계 덕분이란다.

이들의 만남은 영화에서나 볼 법하고, 미래 어느 세계에선가 있을 법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리얼한 현실이다.

우리의 현실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과학기술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미래를 이야기하며, 다가올 세계일 것이라며, 변화에 대한 현실 담론을 늦추고 있다. 그 속내에는 세계의 변화를 유보하고 싶은 무의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사피엔스의 미러는 책 이름이기에 앞서 2015년 멍크 디베이트의 주제였다. 멍크 디베이트는 캐나다 금광 재벌 피터 멍크가 세운 오리아 재단이 2008년부터 열어온 지적 경연이다.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거와 매트 리들 리가 한 짝을 이루어서 벌인 사피엔스의 미래는 사피엔스의 현재이기도 하다.

스티븐 핑거 교수는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이유를 10가지로 들고 있다. 평균수명, 보건, 절대빈곤, 평화, 안전, 자유, 지식, 인권, 성평등, 지능 등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편이었던 리들리도 수치상의 증거를 예로 들면서 인류의 진보는 분명히 있었고, 최빈곤층의 삶이 개선되었다고 했다.

반대편인 알랭드 보통은 인간정신의 복잡성에 유의하면서 철학과 예술, 그 밖의 다른 인문학의 겸허한 성찰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반대했다. 알랭드 보통과 같은 편인 말콤 글래드웰도 과거에 좋아졌기 때문에 미래에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고의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인류의 실존적 위협은 늘 그대로라고 반박하고 있다. 인류의 진보에 대한 긍정 내지는 부정은 너무 안일한 진단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당장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 앞에서 눈부셔하고 있는 중이고, 이것들이 만들어낼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홀로렌즈를 통해서 만난 할아버지와 해리슨 소년의 행복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현재의 사피엔스는 이들의 행복감 이면에 있을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의 비용이 있어야 홀로렌즈를 살 수 있는지 또는 얼마의 비용이 있어야 홀로렌즈를 이용할 수 있는지 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지금, 우리가 저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나 있는지,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데 고비용이 필요하다면 대체 누가 이용할 수 있는 건지, 도무지 머리가 복잡해지기만 하다. 그렇다면 사피엔스의 현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