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겨우내 움츠렸던 아이들이 봄 햇살 아래 나와서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할 때쯤이면 노래에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제비가 돌아왔다. 해마다 그렇게 삼짇날을 전후해서 제비들이 돌아오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것만큼이나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남쪽나라로 날아갔던 제비들은 생사를 건 긴 여정 끝에 고향집에 돌아온 감회가 벅찬지 마당의 빨랫줄에 앉아 한동안 숨가쁘게 지저귀곤 했다.

제비는 철새임에도 유달리 귀소성이 강하다고 한다. 지난해 머물렀던 곳이나 태어난 집을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암 수 한 쌍이 2회에 걸쳐 서너 마리씩 번식을 하니 가을이 되어 남쪽으로 떠날 때에는 다섯 배가 넘게 식구가 불어나는 셈이다. 그러나 오가는 이동 중에 절반가량이 죽고 늙어서 더 이상 번식을 할 수 없는 제비들은 오지를 않아서 매년 일정한 수를 유지했던 것 같다.

제비들이 오고 가는 날이 매년 일정한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흔히들 삼짇날(음력 3월 3일)에 와서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떠나는 거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길한 숫자로 꼽는 3과 9가 겹치는 날에 제비가 오고 간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길조요 영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십여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제비가 둥지를 틀지 않는 집이 거의 없었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이 아닌 야생조류가 사람들과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간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언제부턴지는 몰라도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제비와 한 가족처럼 살아온 셈이다.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면 사실 귀찮은 점이 없지 않다. 새끼들이 깨어나면 적잖이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수시로 떨어지는 배설물을 치우는 일도 쉬운 노릇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날짐승일지라도 사람을 의지하고 찾아든 것을 박절하게 내치지는 않는 것이 우리네 옛 인심이었다.

‘곡식에 제비’라는 말이 있듯이 텃새인 까치나 참새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과는 달리 제비는 오히려 농사에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어서 사람들에게 보은을 한다. 새끼를 가진 암수 한 쌍이 하루에 수백 회나 벌레를 잡아 나른다고 하니 그 수가 실로 적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제비를 보기가 쉽지 않다. 지난 몇 십 년 사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제비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지금은 90% 이상이나 감소되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얼마를 못 가서 아예 제비를 볼 수 없게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제비가 줄어드는 이유로는 농약이나 각종 공해로 인한 먹잇감의 감소에다 사람들의 주거환경이 제비가 깃들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대부분의 인심들이 더 이상 제비를 반기지 않는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제비가 하등 이로운 존재도 아닐 뿐더러 현대화된 가옥구조에 제비가 날아들어 둥지를 트는 것은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것이다. 농작물의 해충쯤이야 농약으로 간단히 해결이 될 것인데 집안을 어지럽힐 뿐인 제비를 반길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물론 제비들과 함께 살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나 정서가 없는 세대로서는 당연한 반문이다.

제비가 날아들어 보금자리를 틀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가난한 시절에서 국민소득 3만 불에 육박하는 시대로, 우리나라는 참 눈부시게 발전을 했다. 하지만 그래서 얼마나 더 행복해 졌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제비들이 더 이상 살수 없게 된 땅이 사람들에게는 과연 행복한 세상일 수가 있을까.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제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멀리 남쪽하늘을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