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이랑<br />수필가<br />
▲ 김이랑 수필가
분단 70년, 작년까지만 해도 극단으로 대립하던 남북의 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꽉 막혔던 물꼬가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트이면서 이 달 말에는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도 열린다. 그 흐름을 타려고 주변 4강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아 평화정착으로 가는 길은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

이쯤이면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했던 신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혀 있지나 않은가. 내 생각 내 방식만 옳다는 스스로 내린 규정의 편견에 빠져 있지나 않은가. 강요 받든, 세뇌되든, 스스로 극단주의로 빠지든, 우리는 분단과 냉전시대가 요구하는 신념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2017년 개봉된 영화 ‘핵소고지’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의 본토를 점령하기 위해서 미군은 병참기지로 삼을 오키나와 섬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대규모 물자와 병력을 투입해 상륙하는데, 영화는 적을 죽여야 내가 사는 극단적인 전투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도 스토리로 보면 미국적 영웅주의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주제에는 편견이 어떠한 오류를 범하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서로 상반되는 신념이 어떻게 하나의 가치에 통합되는지 보여주는데,

㉮ 참전 = 총을 들다, 죽이러 가다 → 신념1

㉯ 참전 = 총을 안 들다, 살리러 가다 → 신념2

㉮와 ㉯는 같지만 다르다. ㉮는 전투병이고 ㉯는 위생병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명사는 ‘신념’이라는 추상명사다. 신념1은 총을 든다. 그러나 신념2는 총을 들기를 거부한다. 다름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기 때문이다. 신념2는 신념1에게 집단으로 ‘왕따’를 당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위생병으로 참전한다. 둘 다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신념1 : 기다. 숨다. 쏘다. 찌르다. 엎드리다. 수류탄을 던지다….

신념2 : 기다. 보다. 다가가다. 살피다. 주사를 놓다. 붕대를 감다. 후송하다….

이처럼 두 신념은 서로 다른 동사로 전투를 치른다.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부상자가 속출한다. 의무병인 신념2는 포화를 뚫고 정신없이 아군을 돌본다. 그러나 일본군의 기습에 밀려 아군이 철수한다.

신념2도 후퇴하지만 부상을 당한 채 구조를 기다리는 전우를 두고 차마 전장을 떠날 수 없다. 살리는 것이 위생병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무기도 없이 적진에 혼자 남은 신념2는 밤새 75명의 부상병을 구한다. 총을 들고 적을 죽이지 않아도 애국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영화는 한 사람의 신념과 다수신념이 충돌하면서 나의 신념만이 옳다는 편견을 깨는 과정을 그렸다. 다른 신념이 충돌하면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렸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방법만 다를 뿐 둘 다 ‘애국’이라는 사실이다.

신념2는 실제 인물이다. ‘데스몬드 T. 도스’인데, 자신의 영웅담을 영화화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을 뜨기 얼마 전 허락했고 그의 ‘신념기’는 2016년 영화로 은막에 재현되었다.

지금 우리사회도 신념이 대립하고 있다. 남과 북, 동과 서, 보수와 진보 등인데, 특히 남과 북의 이념 대립은 분단된 역사만큼이나 골이 깊다. 분단을 빌미로 이념까지 갈라놓은 위정자들은 이를 철저히 권력유지에 이용했다. 언론 또한 분단체제의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북한은 무조건 나쁘다는 프레임에 갇혀있었다. 대립을 조장해야 이익을 보는 세력이 쳐놓은 프레임이다.

역사의 대 전환기, 이제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념을 벗어나야 할 때다. 낡은 이념의 틀에 갇힌 채로는 다가오는 더 큰 물결에 유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