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단국대 교수
▲ 배개화단국대 교수

고등학교 때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를 읽은 적이 있다.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다시 젊어진다. 젊어진 파우스트 박사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한 나라의 재상이 된다. 그는 악마의 힘으로 하룻밤에 거대한 간척지를 만들고, 돈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 모래로 무수한 금화를 찍어낸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는데, 괴테가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초(1808) 괴테의 희곡에서 묘사된 일이 21세기인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지난 6일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조합원인 직원 2천18명에게 28억1천만 주를 잘못 배당하는 금융 사고를 일으켰다. 삼성증권 직원이 우리 사주의 배당 단위인 원을 주로 잘못 입력해서 생긴 일이라고 한다. 이 주식을 당일의 주가로 계산하면 112조원어치나 된다.

더구나 이 주식을 배당받은 직원들 중 16명은 이것을 주식시장에 팔아서 현금으로 만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당일 오전 9시 35분∼10시 5분 사이에 잘못 입고된 주식 중 501만2천주를 주식시장에서 매도했다. 당일 최저가인 3만 5천 150원으로 계산해도, 매도금액은 1천762억원 수준이다.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팔아서 1천762억원의 현금을 만든 셈이다. 이 사고가 보도된 후 언론은 배당받은 ‘유령 주식’을 시장에 판 직원들의 모럴 헤저드를 비난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 소유의 주식이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팔아 금전적 이득을 얻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만을 문제시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삼성증권에게 직원들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점은 다른 것 같다. 사람들을 가장 경악하게 한 것은 컴퓨터의 배당 프로그램으로 주식을 28억 주나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의 발행 한도는 1억2천만 주인데 이 한도를 넘어서는 주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증권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기 필요에 따라 주식을 만들어서 시장에 팔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해 온 것이 아니냐고 의심을 하고 있다.

이런 의심은 주식 ‘공매도’ 금지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매도’는 주식을 실제 보유하지 않는 사람이 주식을 파는 것을 의미한다. 매도자는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같은 종목을 싼값에 다시 매수하여 차익을 챙기는 매매 방식이다. 공매도 후 주식의 가격 하락이 클수록 매도자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삼성증권의 경우처럼, 없는 주식을 시장에 판 후 11% 하락한 가격에 주식을 되사서 갚으면 그 차익만큼 이익을 얻게 된다. 문제는 공매도로 인한 주식 가격 하락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관과 외국인만이 공매도를 할 수 있고 개인은 할 수 없다. 이번 사고처럼 ‘공매도’ 제도를 이용해 기관이 없는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개인투자자는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공매도 제도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현재 20만 명이 참여했다.

필자는 20년 전 종합주가지수가 800선일 때 모 증권사의 삼성전자 펀드(이후 사기 펀드로 물의를 일으켰다)에 투자했다가 반년 만에 30% 손해 보고 판 이후 주식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고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내가 이런 세상을 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우스트는 금화를 만드는데 모래라도 사용했지만 우리나라 증권사는 키보드와 프로그램으로 돈을 만들고 있다. 정말 멋진 신세계이다. 나도 파우스트처럼 ‘시간아 멈춰라’를 외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