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

최근 알고 지내던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한 모임에서 “요즘 초등생들 대부분은 화장을 하고 다니는데 장난이 아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비비크림은 기본이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온갖 화장품과 도구를 들고 다니며 심지어는 마스카라까지 하고 등교하는 아이도 있다며 벌써부터 아이들이 외모에 신경을 쓰니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10대 초반에 ‘생얼’도 예쁘기만 한데 화장하는 어린이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상술에 어린이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온갖 화학제품에 빠져든다는 생각을 하니 씁쓸하다.

얼마전 미국에서는 유아용 화장품으로 3살 어린이가 얼굴에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한 남성은 동네 마트에 갔다가 딸에게 립스틱과 립글로스, 알록달록한 색깔의 아이섀도로 구성된 어린이용 화장품 세트 장난감을 사줬다. 그는 이 장난감이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라 당연히 무해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화장품을 사용한 바로 다음날 어린아이의 눈과 입 등 화장품을 사용했던 부위가 부풀어 오르며 물집이 터지기 시작했다. 또 온몸에 발진이 생겨 가려움을 호소했다. 급하게 병원을 찾아 응급처치를 받은 아이의 부모는 화장품 부작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병원에 입원한 아이는 일주일 지나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유아용 화장품을 썼다가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진 아이 부모는 유아용 화장품을 사용해 발생한 피해를 다른 부모들에게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에 아이의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 온라인 경제지가 한국 어린이들의 화장품 사용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24%가 화장을 하고 초등 여학생 중 42.7%가 화장품을 써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지난해 어린이용 립스틱 판매량이 549%나 증가했다고 한다. 세계 8위권의 화장품 시장인 한국의 어린 소녀들이 너무 일찍부터 화장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업계가 여성화장품에 이어 남성화장품시장을 공략하더니 이제는 어린이 화장품까지 온갖 상술을 동원해 발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이용 화장품시장이 급성장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어린이용 화장품 카테고리를 별도로 추가할지 여부까지 검토에 나섰다. 대구시 보건환경연구원의 ‘어린이(청소년)용 화장품 유해금속 오염실태 및 안전관리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 및 할인점 등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장품 중 어린이(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기초와 색조화장품은 일반적으로 만화캐릭터나 도안을 용기, 포장에 표시해 마치 어린이용인 것처럼 오인할 수 있도록 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주로 할인마트나 온라인 등에서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는 완구형태의 화장품은 법을 준수하고 있지 않은 실정도 파악됐으며.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어린이용 화장품 사용 후 부작용 사례는 2011년~2014년까지 총 57건 접수된 것으로 조사됐다. 볼연지, 페이스 파우더, 리퀴드 파운데이션, 메이크업 베이스, 립스틱, 립라이너 등 청소년들은 주로 색조용 화장품 49건에 대한 검출 함량 분석결과 납, 비소, 카드뮴, 안티몬 및 수은은 허용기준에 적합했으나 허용기준이 없는 크롬, 망간, 알루미늄의 검출 함량은 모두 기초화장품 검출량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붉은색 혹은 연한 붉은색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알루미늄의 경우 아이섀도, 립스틱 그 외에 페 이스 파우더에서 높게 검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장품 사용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고 화장하는 어린이 및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어 어린이용 색조화장품 유해금속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화장을 못하게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정책 당국의 어린이용 화장품에 대한 강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