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원 수필가
▲ 박창원 수필가

지금은 정보의 홍수 시대다. 매일 새로운 정보가 우리 앞에 있다. 그 정보는 주로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생산, 유포된다. 자고나면 새로운 용어가 생기고, 신조어가 탄생하며, 거기서 흘러나온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한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그 중에 하나가 잘못 쓰이는 언어다. 방송에서 출연자가 잘못 쓴 말을 대중들이 따라 하다 보니 틀린 말이 바른말인 양 아무런 거부감 없이 유통된다.

요즘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틀리다’로 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방송의 영향이다. “제 생각은 좀 틀린데요….” ‘틀리다’라는 말은 ‘맞지 않고 어긋나다’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쓰면 안 된다.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가 맞다. 아예 뜻을 정반대로 쓰는 ‘개념전도(槪念顚倒)’의 예도 많다.

광고에 많이 나오는 ‘피로회복’이 개념전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1960년대 한 제약회사에서 피로를 풀어준다는 약을 만들어 ‘피로회복제’라는 슬로건으로 광고를 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 박혀버린 용어다. 하지만 ‘피로회복’이란 용어는 잘못된 말이다. ‘경제회복’이라 하면 경제를 회복한다는 뜻이고, ‘건강회복’이라 하면 건강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국권회복’이라 하면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이요, ‘컨디션 회복’이라 하면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피로회복’이라 하면 피로를 회복한다는, 다시 말해 피로한 상태로 돌린다는 뜻이다. 피곤한 상태로 돌리기 위해 약 약을 먹으라니, 어불성설이 따로 없다.

피로회복은 피로한 상태로부터 회복된다는 뜻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로부터 회복된다는 뜻으로 쓰는 용어가 ‘스트레스 회복’일까? 그렇지 않다. 스트레스는 풀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라 한다. 피로도 회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해소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피로해소’가 맞다.

‘안전불감증’이란 말도 그렇다. 안전불감증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안전에 감각이 없는 증상’이란 뜻이다. 안전에 감각이 없다니? 안전한데, 다시 말해 편안한테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안전한 상태에서 걱정을 안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안전하지 못한, 위험한 상태이다. 위험요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심하지 않거나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다. 그러니 ‘불안전불감증’이라 하든지, 좀더 간결하게 표현한 ‘위험불감증’이라 해야 맞다. 굳이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면 간결하고 발음하기 좋은 위험불감증이 좋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은 아마 안전을 신경 써야 할 상황인데 그걸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했고, 매스컴을 통해 확산되면서 지금처럼 보편화되었을 것이다.

‘우연찮게’라는 말도 현대인들이 정반대의 뜻으로 쓸 때가 많다. 누가 “오늘 우연찮게 그 사람을 만났어.”라고 한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연찮다’는 ‘우연하지 않다’란 뜻이다. 바꿔 말하면 필연(必然)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의 문장을 정반대의 뜻인 “오늘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났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또한 개념전도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같은 매체가 대중들의 일상사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방송 진행자나 출연자, 기사 작성자가 잘못 쓴 말은 아무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대중들은 그게 바른 말인 양 따라 하게 된다. ‘틀리다’나 ‘우연찮게’는 방송에서 자막을 통해 ‘다르다’나 ‘우연히’로 정정해서 내보내는 경우가 있지만, ‘피로회복’이나 ‘안전불감증’은 정정될 희망이 없어 보인다. 오랜 기간 국민의 뇌리 속에 굳어버린 용어라 어쩔 수 없다고 여겨서인지 우리 모두의 ‘오류불감증’ 때문인지….

가치 혼란의 시대에 이래저래 언어마저 혼란스럽다.